2017.07.05 13:37

수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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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1796년 정조가 그의 아버지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화성은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 받는다. 사적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원 화성 [Suwon Hwaseong Fortress, 水原 華城] (두산백과)

 

http://www.swcf.or.kr/?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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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창룡문' (수원역 하차, 버스로 이동)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으로 1795년(정조 19) 건립하였다. 건축양식은 돌로 쌓은 홍예문 위에 단층문루를 세우고 밖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쪽이 열려 있는 옹성을 쌓은 구조이다. 이후 6·25전쟁으로 문루와 홍예가 크게 소실되었으나 1975년 다시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안팎으로 홍예를 설치하였는데, 홍예의 규모가 서로 달라 내홍예는 높이 4.8m이고, 외홍예는 4.5m이다. 문루는 6칸 규모로 내외 3포에 이익공(二翼工) 건물이다. 창룡문의 외성인 동옹성은 높이 2.9m, 둘레 17.2m이며 가까운 곳과 먼 곳을 겨냥할 수 있는 총안 14개가 나 있다. 창룡문 왼쪽에는 축성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문 부근에는 연무대와 활터가 있다. 편액은 판부사 유언호(兪彦鎬)가 썼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룡문 [蒼龍門]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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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둘레 총 5.7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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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옹성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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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실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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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에서 맞은편 동무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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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팔달산, 정상에 서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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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대 (동장대)에서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동장대는 1795년(정조 19) 7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 25일 완공되었다.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鍊武臺)라고 하였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장대 [東將臺, 鍊武臺] (수원화성 테마관, 수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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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있는데 암문 위에 벽돌을 깔고 커다란 둥근 담장이 설치된 구조이며 1796년(정조 20) 3월 25일 완공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암문 [東暗門] (수원화성 테마관, 수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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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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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수류정

수원 화성(사적 제3호)에 있는 네 개의 각루(角樓; 성벽 위의 모서리에 지은 누각) 중 동북쪽 각루로, 동북각루라고도 부른다. 적의 동태를 살피는 망루이자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인 동시에 용연(龍淵)·수원천 등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는 정자이기도 하다. 성 밖에 있는 연못인 용연의 남쪽, 화성의 북쪽 수문(水門)인 화홍문(華虹門)의 동쪽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고있다. ‘방화수류(訪花隨柳)’라는 명칭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으로, 송나라 성리학자 정호(程顥)의 시 〈춘일우성 春日偶成〉에 나오는 ‘운담풍경오천 방화수류과전천(雲淡風經午天訪花隨柳過前川)’이라는 구절에서 땄다.

1794년(정조 18) 9월 4일 착공하여 10월 19일 완공한 건축물로, 석공 김차봉(金次奉)·최기득(崔貴得), 목수 한천석(韓天石), 미장 권옥(權玉), 기와장 이흥득(李興得) 등 여러 장인들이 공사에 참여하였다. 1848년(헌종 14) 중수하였고,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걸쳐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1801년(순조 1) 간행된 화성 축조에 관한 기록서 《화성성역의궤 華城城役儀軌》에 1795년 2월 정조가 화홍문을 거쳐 방화수류정에 거동하였고, 1797년 1월 이곳에서 신하들과 활을 쏘았다고 적혀 있다.

평면은 기본적으로 ‘ㄱ’자 형태이지만 동측과 북측(용연 쪽)은 ‘凸’ 형으로 돌출되어 사방을 볼 수 있다. 석재, 목재, 전돌(흙을 구워 만든 벽돌)을 적절히 사용하여 지었으며, 건축면적은 46.9㎡(14.2평)이다. 복합적 형태를 지닌 지붕은 대부분 팔작지붕이고, 지붕 위에는 절병통(기와로 만든 항아리 장식)을 세웠다. 겹처마에 연등천장이다. 

높이 1.1~1.5m의 직사각형 초석에 원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각기둥을 세웠다. 각루 하부는 전돌로 벽을 쌓았는데, 서측에는 ‘+’ 형태의 무늬를 넣은 꽃담으로 꾸몄다. 남측에 설치한 돌계단을 오르면 사각의 넓은 석대(石臺)가 나오고, 그곳에서 나무계단을 오르면 누마루로 올라설 수 있다. 누마루에는 계자난간을 두르고, 우물마루를 깔았다. 《화성성역의궤》의 도면을 통해 계단이 하나 줄어든 것 외에는 대체로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특한 평면과 지붕을 지닌 군사시설 겸 정자로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자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 건축물이다. 18세기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크다. 2011년 3월 3일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원 방화수류정 [水原訪花隨柳亭]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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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홍문

수원화성의 북수문이며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의 범람을 막아 주는 동시에 방어적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화강암으로 쌓은 다리 위에 지은 문이다. 7개의 홍예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지어져 있으며 누각의 건축면적은 52.89㎡이다. 누상에 오를 때에는 좌·우 측면에 있는 돌 계단을 이용한다. 7개의 홍예문 중에 중앙의 1칸만이 높이와 폭이 크고 나머지는 모두 같다. 수문의 바깥쪽에는 철전문을 설치하여 적의 침투를 막았다. 7개의 수문을 통하여 맑은 물이 넘쳐 흘러 물보라를 일으키는데, 현란한 무지개가 화홍문을 한층 더 아름답게 한다. 이를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 하여 수원 8경 중에 하나로 꼽는다. 1794년(정조 18) 음력 2월 28일 터 닦기 공사에 착수하여 1795년(정조 19) 정월 13일 문루가 준공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홍문 [華城 華虹門]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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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

하나의 홍예문(虹霓門)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바깥 쪽으로 원형 옹성(甕城)을 갖추었다. 홍예 위로 4개의 누조(漏槽)를 설치하고, 성벽 위에는 안팎에 총구(銃口)를 갖춘 여장(女墻)을 쌓았다. 홍예 위에는 오성지(五星池)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5개의 구멍을 갖춘 큰 물통으로, 적이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문 좌우로 성벽이 이어지며, 문에서 53보(步) 되는 곳에 각각 적대(敵臺)가 마련되어 있다.

이 문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성문 형태를 취하였고, 규모나 구조는 조선 초기에 세워진 서울 숭례문과 매우 비슷한, 당당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숭례문에 비해 좀더 새로운 것은 옹성, 적대와 같은 방어 시설을 갖춘 것이 특색이다.
 
1920년대 수원시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리고,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다가, 1978년 문루는 원래대로 복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안문 [長安門]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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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포탄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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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기 총포탄 자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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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누각으로서 상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의 모임지붕으로 되어 있다. 뒤편에는 8면의 노대(弩臺: 서노대)를 세웠는데, 이곳은 쇠뇌를 쏘는 군사인 노수(弩手)가 머물던 곳이다. 또한 현재는 복원이 안됐으나 후당(後堂) 3칸을 지었다. 서쪽 두 칸은 온돌이고, 동쪽 1칸은 판자를 깔았다. 모두 창과 분합문을 설치하고 단청을 하였다.

이곳은 성의 안팎이 모두 한눈에 들어와, 화성 성곽 일대는 물론 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백 리 안쪽의 모든 동정을 파악할 수 있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터 닦기 공사에 착수하였고, 9월 16일에 상량하고, 9월 29일에 완공되었다. 정조가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을 직접 썼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장대 [華城西將臺]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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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노대

팔달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서노대(西弩臺)는 돌축대 사이를 벽돌을 채워 쌓아 높이 만든 시설물로 이곳에서는 군사 명령에 따라 오방색 깃발을 흔들어 명령을 전하기도 하고, 또 쇠뇌라는 큰 화살을 날리기도 하였다.

노대는 '무비지(武備誌)'에 이르기를,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야 하며, 대 위에 집을 짓되 모양이 전붕(戰棚)과 같이 하고, 안에 노수(弩手)가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노대는 그 제도를 따른것이지만 '무비지'에 있는 그대로 지은 것은 아니다. '무비지'에는 육각으로 되어 있고, 오르는 계단 두 개이며 노수가 들어가는 집이 있었다. 그러나 서노대는 팔각으로 깍아지른 듯이 우뚝 서 있으며 오르는 계단도 한 개로 하였고, 집도 얹지 않았다.

돌 계단에 기와 벽돌을 쌓아 면을 만들고, 돌을 깍아 모서리를 만들었다. 돌계단은 정 동향의 한 면을 틔어 설치하였다. 대 위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한 가운데에 또 다시 방대(方臺)를 쌓았다. 건축재료로 돌과 벽돌을 동시에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여장(女墻)도 벽돌로 만들었는데 철형여장을 7면에 설치하였고, 각각 총안을 뚫었다. 서노대에 오르면 성밖의 서쪽이 한눈에 들어 오며 적으로부터 군사 지휘소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노대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화성의궤),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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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에서 내려다 본 수원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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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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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에서 후딱 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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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터는 2007년 4월 1일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었다. 한국의 행궁(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던 곳으로, 수원 화성(華城:사적 3)의 부속물이다. 1796년(조선 정조 20)에 화성을 축성한 후 팔달산(八達山) 동쪽 기슭에 576칸 규모로 건립하였으며, 그 전까지는 1789년(정조 13) 수원읍치를 화산에서 팔달산으로 옮기면서 관아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부왕 장조(莊祖:장헌세자)의 능침(陵寢)인 화산릉(華山陵)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 행궁에서 쉬어갔다. 당시에는 봉수당(奉壽堂)과 경룡관(景龍館)·복내당(福內堂)·유여택(維與宅)·노래당(老來堂)·신풍루(新豊樓)·남북군영·강무당(講武堂)·무고(武庫)·수성고(修城庫)·집사청(執事廳)·서사청(書史廳)·비장청(婢將廳)·우화관(于華館)·득중정(得中亭)·행각(行閣) 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화성행궁의 주건물인 봉수당에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훼손되고 낙남헌(洛南軒)만 남게 되었다. 봉수당의 원래 이름은 정남헌인데, 정조가 모친 혜경궁 홍씨(경의왕후)의 회갑연을 이곳에서 베푼 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봉수당으로 불렀다. 낙남헌은 봉수당 북쪽에 있던 ㄱ자 건물인데 노래당과 함께 곱은 ㄱ자형으로 배치된 초익공(初翼公) 양식의 팔작지붕집인데, 지금은 꺾인 부분이 잘리어 없어지고 一자형의 건물로 바뀌었다.

1975년 화성 복원 결정과 함께 행궁 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96년 화성축성 200주년을 맞아 수원시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복원공사를 시작하였고, 2003년 7월 말 봉수당, 득중정, 궁녀와 군인들의 숙소 등 482칸의 복원을 완료한 1단계 공사가 끝났다. 이어 10월 9일 화성행궁 21개 건물 중 18개 건물과 정조의 영전(影殿)인 화령전 등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개관식을 가졌다.

2010년까지 이어질 2단계 사업에서는 신풍초등학교가 위치한 우화관과 맞은편에 위치한 별주, 내포사 등 화성행궁의 나머지 3개 건물 94칸과 행궁담장 등을 복원하여 세계적인 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원 화성행궁 [水原 華城行宮]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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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한다. 화성 행궁의 정전(正殿) 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1789년(정조 13) 8월 19일 상량하여 같은 해 9월 25일 완공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97년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봉수당(奉壽堂)이라는 건물 이름은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으로 정조가 헌경왕후(獻敬王后, 혜경궁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지었으며, 뒤에 돈령부지사를 지낸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이 편액을 썼다. 1795년(정조 19) 이곳에서 헌경왕후의 회갑연인 진찬례가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성행궁 봉수당 [華城行宮奉壽堂]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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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락당

화성 행궁의 침전으로 1794년(정조 18) 화성 성역 중에 완공하였다. 봉수당(奉壽堂) 남쪽에 동향으로 지었으며 봉수당의 서남쪽 지붕과 겹쳐 있다. 1795년(정조 19) 을묘원행 당시에 헌경왕후(獻敬王后, 혜경궁홍씨)의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편액은 정조가 헌경왕후의 만수무강을 빌며 직접 썼으며 상량문은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정민시(鄭民始, 1745∼1800)가 지었다. 장락당(長樂堂)이라는 당호는 전한의 도읍 장안성의 태후궁이었던 장락궁에서 따온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성행궁 장락당 [華城行宮長樂堂]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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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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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헌

1972년 7월 3일 경기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으나 수원 화성행궁이 2007년 6월 8일 사적 제478호로 승격 지정되어 경기도 기념물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팔작지붕 건물. 뒤쪽으로 노래당(老來堂) 3칸이 이어져 있다. 건물의 기단은 돌과 전돌을 섞어 쌓은 특이한 형식으로 18세기 말에 수원성과 수원행궁을 지으면서 고안해낸 기법인 듯하다.

정면 기단 가운데에 3단 계단을 놓았는데, 그 소맷돌에는 구름 모양을 조각하였고 삼태극(三太極)을 새긴 돌을 붙여놓았다. 기단 위에는 50㎝ 높이로 주춧돌을 놓고 모두 둥근 기둥을 세웠다.

전면 기둥에는 약간의 배흘림이 보이며 그 위에 창방을 두르고 쇠서[牛舌]를 갖춘 2익공을 짜맞추었다. 창방 위에는 평범한 풀무늬새긴 화반(花盤)·운공(雲工) 등을 배열하였다.

가구(架構)는 7량가(七樑架)로, 2고주(二高柱) 위에 대들보와 마루보를 올리고 앞면에 툇간을 낸 구조를 기본으로 하여 좌우에 충량(衝梁)을 걸어 협칸[夾間]을 구성하였다. 바닥은 근래에 보수한 우물마루를 앞쪽에 설치하였으며 벽체의 창호도 모두 새로 만든 것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지붕마루는 회반죽을 바르고 용두와 취두를 올렸다. 이 건물은 원래 화성행궁(華城行宮)의 일부로 지어진 것이나 일제강점기에 모두 헐리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며, 건립 연대는 1794년(정조 18)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원 행궁 낙남헌 [水原行宮洛南軒]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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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어진을 모신 운한각 (회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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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의 가마, 정조 임금의 말 (왕은 그려 넣지 않음), 군주 가마들 (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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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4 19:55
    이 곳은 2일 이상을 연짱 가서 보고, 배우고, 기억해야 할 곳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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