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5 22:41

수원 화성 반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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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융건릉, 점심은 보영만두에서, 오후 3시 부터 수원화성 반바퀴.

나는 2년 전 방문 때 창룡문에서 시작, 화성 북쪽 부분 시계 반대방향으로 서장대까지 간 후 화성행궁으로 내려 왔었다.  이번에는 못 가 본 남쪽 코스 걸어 보기로.  동이치에서 남쪽 시계방향으로 팔달문 거쳐 서장대로 오른 후 화성행궁으로 내려 오기.

 

 

http://www.swcf.or.kr/?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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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치: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 잘 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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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돈:  

일반적인 봉수대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수원 화성 봉돈은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정교하게 만든 수원 화성의 대표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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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포루:

포루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동이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며 1796년 (정조 20년) 7월 3일에 완공되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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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삼치:  동이포루와 동남각루 중간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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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각루: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이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동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은 곳이다.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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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인 팔달문쪽으로 내려 가서 맞은 편 팔달산으로 오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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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천 건너 저기 오른쪽 통닭거리 '진미통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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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근처 남문시장에서.  찹쌀도너츠랑 꽈배기 1개씩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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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1964년 9월 3일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1794년(정조 18) 세워졌으며 규모는 문루의 정면이 5칸, 측면이 2칸이고 양식은 중층 우진각지붕이다. 석축의 홍예문 위에 중층의 문루를 세웠는데 주위 4면에는 여장(女墻)을 돌리고, 전면에는 반월형으로 옹성(甕城)을 축조하였으며 한국의 성문 건축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형식을 모두 갖추었다.

문루 내부에는 중앙에 고주(高柱)를 한 줄로 배치하였는데 상하층 대량(大樑)은 전부 이 고주에 연결된다. 공포(栱包)는 상층이 내외 삼출목(三出目)이나 하층은 외이출목, 내삼출목이며 내부는 모두 초화문(草花文) 장식으로 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달문 [水原 八達門]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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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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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치:  팔달문과 남포루 사이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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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zoom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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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루.  문이 닫혀 있어서 안을 들여다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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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암문과 서남포사: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이 문은 용도 (담을 양쪽으로 쌓아 만든 길)의 출입문이기도 하다.  5개 암문 중에서 유일하게 포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796년 8월 6일 홍예가 완성되었다.  포사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신호를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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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치.  서포루와 서남암문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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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의 종.  우리도 천원에 3번치는 것으로 처음 종을 쳐 보았다.

 

1991년 11월 수원시가 조성한 높이 3.54m·지름 2.15m·무게 12.5톤의 종(鐘)이다. 팔달산 정상에 종각이 세워져 있으며, 19평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한식 기와집이다.  '효원의 종'은 유료로 타종할 수 있다. 3번 종을 칠 때마다 제각각 다른 의미의 소원을 빈다. 첫 번째 타종하면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두 번째는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빌며. 세 번째는 자신의 발전과 소원 성취를 기원한다. 이 종각은 ‘효의 도시 수원’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원 효원의 종 [水原孝園-鐘]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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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문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는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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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서암문으로 나가면 성곽 밖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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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에 완성되었다.  정조는 1795년 현륭원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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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을 내려다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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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터는 2007년 4월 1일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었다. 한국의 행궁(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던 곳으로, 수원 화성(華城:사적 3)의 부속물이다. 1796년(조선 정조 20)에 화성을 축성한 후 팔달산(八達山) 동쪽 기슭에 576칸 규모로 건립하였으며, 그 전까지는 1789년(정조 13) 수원읍치를 화산에서 팔달산으로 옮기면서 관아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부왕 장조(莊祖:장헌세자)의 능침(陵寢)인 화산릉(華山陵)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 행궁에서 쉬어갔다. 당시에는 봉수당(奉壽堂)과 경룡관(景龍館)·복내당(福內堂)·유여택(維與宅)·노래당(老來堂)·신풍루(新豊樓)·남북군영·강무당(講武堂)·무고(武庫)·수성고(修城庫)·집사청(執事廳)·서사청(書史廳)·비장청(婢將廳)·우화관(于華館)·득중정(得中亭)·행각(行閣) 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화성행궁의 주건물인 봉수당에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훼손되고 낙남헌(洛南軒)만 남게 되었다. 봉수당의 원래 이름은 정남헌인데, 정조가 모친 혜경궁 홍씨(경의왕후)의 회갑연을 이곳에서 베푼 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봉수당으로 불렀다. 낙남헌은 봉수당 북쪽에 있던 ㄱ자 건물인데 노래당과 함께 곱은 ㄱ자형으로 배치된 초익공(初翼公) 양식의 팔작지붕집인데, 지금은 꺾인 부분이 잘리어 없어지고 一자형의 건물로 바뀌었다.

1975년 화성 복원 결정과 함께 행궁 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96년 화성축성 200주년을 맞아 수원시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복원공사를 시작하였고, 2003년 7월 말 봉수당, 득중정, 궁녀와 군인들의 숙소 등 482칸의 복원을 완료한 1단계 공사가 끝났다. 이어 10월 9일 화성행궁 21개 건물 중 18개 건물과 정조의 영전(影殿)인 화령전 등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개관식을 가졌다.

2010년까지 이어질 2단계 사업에서는 신풍초등학교가 위치한 우화관과 맞은편에 위치한 별주, 내포사 등 화성행궁의 나머지 3개 건물 94칸과 행궁담장 등을 복원하여 세계적인 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원 화성행궁 [水原 華城行宮]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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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옆의 서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두 곳이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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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으로 내려오는데 수원 화성행궁 우화관 (화성유수부의 객사) 일대 발굴 조사 중.  수원 객사의 처음 명칭은 팔달관이었다가 1795년 우화관으로 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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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거리'  길이는 500미터 정도로 짧다.  크게 볼 건 없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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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정문 '신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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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비는 느티나무.  600년 이상된 노거수로 화성 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온 신령스런 나무이다.  예부터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목신의 노여움을 사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였다.  또한 소원지에 소원을 적어 걸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는 30미터.  둘레는 6미터에 이른다.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나  뜻하지 않은 화재로 인해 훼손되어 대대적인 나무살리기 작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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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루 앞에는  양쪽으로 350년 된 보호수가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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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 서장대에서 내려 온 거.  바닥에 새겨진 그림 설명 '제독검' (이여송의 '제독'이라는 계급이 검보의 명칭에 붙은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전해졌음을 알 수 있지만 조선에서 완성된 검보이다.  물론 이런 검보는 '무예도보통지'에만 나온다.  총 14세법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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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세워 놓은 수원 화성 박물관에서 마침표.  지금은 중지된 스탬프 투어를 기약해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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