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박물관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
http://www.agrimuseum.or.kr/
중구 새문안로 16 농협중앙회 중앙본부 (02-2080-5727)
농업은 인류의 생명창고...
1층 전시관앞 줄다리기 줄. 농업 = 협동심을 상징화한다. (충남 당진시 송악읍 지역에서 50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기지시 줄다리기는 농사철을 대비해 협동심을 기르고 즐겁게 놀며 한 해 농사의 풍작과 평안을 기원하는 민속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줄을 만드는 과정부터 놀이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협동심을 통해 이루어진다.)
1층 농업역사관
선사시대부터 근,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농업발달사를 시대순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한반도 농경의 시작부터 농사도구의 발달과정을 보여준다.
선사시대 (신석기) 움집과 생활상
토기 만드는 원시인. 인류와 가장 오래 같이 지내 온 가축, 개. 움집. 불을 피우는 모습 등
청동기 시대 농경마을 재현
이삭을 떼어내는 도구 '반달모양돌칼' (벼농사 근거)
농경문 청동기를 형상화한 모습. 돋보기 아래 모형이 담겨 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92&contents_id=4038
농경문 청동기
경남 밀양시 금철리 논 유적 (청동기시대)
야철지
김제 벽골제 모형
부여 궁남지 터에서 발굴된 사람 발자국 모습
신라 민정문서
《신라장적(新羅帳籍)》이라고도 한다. 755년경의 것으로서 1933년대에 일본 쇼소인[正倉院] 소장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화엄경론(華嚴經論)의 질(帙) 속에서 발견되었다. 서소원경(西小原京:지금의 淸州地方) 의 4개 촌락에 대하여 촌락별로 보수(步數)·호구수(戶口數)·전답(田畓)·마전(麻田)·과실나무 수·가축의 수 등을 기록하고 3년 동안의 변동 내용을 싣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라민정문서 [新羅民政文書] (두산백과)
목간. 목간의 기록들은 종이가 발명 보급되기 이전 시기 고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부여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목간에는 '수전오형'이라는 글이 있어 당시 논을 '형'이라는 단위로 구획하였슴을 알 수 있다.
수레모양 토기, 장군 모양 토기 등.
소를 이용한 농경. 삼국시대 농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소를 이용한 쟁기질 보급.
'신라 지증왕 3년에 소갈이를 이용하였다..'
비단, 마, 삼베, 면
누에로 비단실 만들어 내는 모형
체계적인 농업 경영시대. 조선
선농단 [ 先農壇 ]
선농제(先農祭)를 지내던 제단(祭壇). 조선 시대에는 역대 임금들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농경에 관계되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신(主神)으로 하여 단(壇)을 쌓고 제사하였음. 조선 태조(太祖) 때부터 한양(漢陽) 동교에 선농단을 설치하였으며, 임금이 친제(親祭)할 때에는 매년 경칩(驚蟄) 후 해일(亥日)에 선농단(先農壇)에서 선농제를 지내고 적전(籍田)에서 친경(親耕)하였음.
[네이버 지식백과] 선농단 [先農壇]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조선시대 온실
맞두레, 무자위...
시비법
농사를 지으면서 토양에 비료를 주는 시비는 옛날부터 시행되어 오던 농법이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들어와 시비의 방법이 더욱 발전되면서 농업기술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2세기 이후에는 수리시설의 발전, 다양한 볍씨의 도입과 관련된 종자개량과 더불어 두엄 등을 거름으로 사용하는 시비법이 개발되어 농업생산력이 향상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비법 [施肥法] (두산백과)
양안: 조세 부과를 목적으로 전지(田地)를 측량하여 만든 토지대장.
국가적인 수세가 이루어진 모든 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는 조선시대의 자료만이 전한다. 전안(田案)·철권·도행장(導行帳)·전적(田籍) 등으로도 불렸다. 국가에서 전세(田稅)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징수하기 위하여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여 기록한 장부로서, 농민층의 토지소유 상황, 농가소득 정도, 계층분화의 정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안 [量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왼쪽, 지방마다 차이나는 모양의 호미들
따비: 논이나 밭을 가는 원시적인 형태의 농기구.
농경문화 발생 이전의 수렵채집민이 사용하던 굴봉(掘棒)에서 발전된 것으로 따비가 발전하여 쟁기나 극젱이가 나타났다. 근래에까지 서해안과 그 도서지방 및 제주도에서 극젱이로 갈고 남은 구석진 땅이나 돌밭을 가는 데 사용되었다. 요즈음에는 솔뿌리나 청미래덩굴 등을 캐기도 하는데 이를 ‘솔따비’라고 하며, 따비로나 갈 수 있을 만한 좁은 땅을 ‘따비밭’이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 따부(경기도 덕적도 등지)·따보(전라남도 영광군)·탑(함경북도) 등으로 불리며, ≪농사직설≫에는 ‘耒(향명:地寶)’, ≪산림경제≫에는 ‘地保’, ≪해동농서≫에는 ‘‘長鑱(뷔)’로 표기되어 있다. 3, 4세기의 청동기에 따비를 쓰는 모습이 나타나고 철기시대 유적지에는 따비의 날이 명도전과 함께 출토되었으며, 낙랑군의 고분에서 출토된 전(塼)에도 이의 그림이 있어 우리 나라에서 따비 사용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려 준다. 따라서 따비는 이 땅에 농업이 시작된 당시부터 거의 전국적으로 사용되다가 농경술과 농기구의 발전에 따라 내륙지방에서는 100년 전쯤에 자취를 감추고, 발전이 늦어진 일부 해안이나 도서지방에서 요즈음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따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학수 화백의 농가월령도.
2층 농업생활관
못줄
옛 농촌들판 풍경과 농경민속, 농가주택, 전통장터의 모습을 통하여 조상들의 삶을 조명하고 삶에 깃든 지혜와 여유 등을 엿볼수 있는 곳이다. 아울러 한 가정의 울타리내에서 일어나는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어 그시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2층 전시공간 양쪽으로 사계절 밭농사와 논농사 디오라마 펼쳐짐
24절기
마을 단위의 농업협동조직인 두레는 구성원간의 엄격한 규율 아래 민주적으로 진행된다.
뒷쪽 들돌 (두레 농사 후 힘자랑 할 때 드는 돌)
가신신앙을 모셨던 사진 (왼쪽)
장터 모습
대장간
아이들 체험 놀이 공간. 농산물 사고 팔 때 수량 단위 맞추기
1층 로비에는, '다 함께 잘 사는 길, 협동' 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실이 있다. 농업인의 날을 맞이하여 협동정신으로 우리나라 농경문화를 이끌어온 농민들의 땀과 노력을 재조명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전통농경사회에서 협동의 가치를 실천했던 농사도구와 사진자료 30여점 및 협동 관련 고사성어, 속담 전시를 통해 협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하는 협동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지하 농협홍보관에서.
농협의 역사와 사업을 소개하고 우리 농업의 우수함과 농업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쌀이 밥이 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거치는 과정과 변화하는 농촌의 모습과 농업기술의 개발로 현대화된 농촌의 모습도 보여준다.
원통에 각종 종자들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