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를 가려다가 날씨도 쌀쌀하고, 봄의 (충무공 후손) 해설사 선생님이 안 나오시는 날이라, 이충무공 묘로 갔다.
이쪽으로 가는 진입로 드라이브길에도 노란 은행나무들이 멋지게 늘어져 있다. 늦가을의 쌀쌀한 바람에 떨어진 잎들이 휘날리는데 오히려 현충사 은행나무길 보다 더 낫게 느껴진다. 특히 주차장 바로 앞에 서 있는 이 은행나무가 멋진 포인트다.
충무공 묘 들어가는 길
1959년 5월 22일 사적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장렬한 전사를 하자 조정에서는 조문사절을 파견하였고 1599년 2월에 충청남도 아산시 금성산에 장사하였다. 그 후 광해 6년(1614)에 충청남도 아산시 어라산 현 위치로 모셨다. 묘역은 9,583㎡이며 묘 1기 외에 비석 1기, 상석(床石) 1기, 장명등 1쌍, 석상(石像) 1쌍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산 이충무공묘 [牙山 李忠武公墓] (두산백과)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1120000,34&ref=naverdic
원형분의 묘 앞에는 비석, 상석, 혼유석, 무인석, 장명등, 석수 등이 늘어서 있다.
1598년(선조 31) 정유재란중 이순신은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일본군 고니시(小西行長)군대와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여, 그 이듬해 2월 고향인 아산군 빙항산에 장사하였으나, 그 뒤 다른 곳으로 이장하였다가 다시 빙항산의 현위치로 옮겼다.
원형분(圓形墳)의 묘 앞에는 비석(碑石)·상석(床石)·혼유석(魂遊石)·무인석(武人石)·장명등(長明燈)·석수(石獸) 등이 늘어서 있다. 비석은 5대손 봉상(鳳祥)이 당시 판부사(判府事) 이이명(李頤命)의 글을 얻어 음기(陰記)를 새겨 넣었다.
묘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영의정 김육(金堉)의 글이다. 이순신의 전적지에는 이항복(李恒福)의 전라좌수영대첩비, 이민서(李敏敍)의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 정기안(鄭基安)의 제승당유허비(制勝堂遺墟碑), 송시열(宋時烈)의 통제영충렬사기(統制營忠烈祠記), 이이명의 고금도유사기(古今島遺祠記) 등의 비갈명(碑碣銘)이 있다.
순천의 충민사(忠愍祠), 해남의 충무사(忠武祠), 남해와 통영의 충렬사, 아산의 현충사(顯忠祠) 등에서 그를 봉사하고 있다. 묘역의 넓이는 9,583㎡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충무공묘 [李忠武公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조 18년(1794)에 세워진 어제비(御製碑)와 비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