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예안 이씨의 집성촌. 500여 년 전부터 형성된 전통 부락으로 현재 80여 호가 살고 있다. 중요 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된 외암리 민속마을은 양반가의 고택과 초가집, 돌담이 어우러져 얼핏 한국민속촌을 연상시키지만 사람이 실제 기거하는 마을이며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영암댁, 종손댁 등 택호가 정해져 있다. 외암이라는 마을 이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이간(李柬)이 설화산의 우뚝 솟은 형상을 따서 호를 외암(巍巖)이라 지었는데,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도 외암이라고 불렀으며 한자만 외암(外巖)으로 바꾼 것. 또 하나는 인근 시흥역의 말을 거둬 먹이던 곳이라 하여 오양골로 불리다가 변하여 외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이 살던 영암군수댁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재 고택이라고도 불린다. 참판댁은 이조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이 살던 집인데 고종황제가 이정렬에게 하사해 퇴호거사(退湖居士)라고 쓴 사호현판이 아직 남아 있다. 또 송화군수를 지낸 이장현이 살던 송화댁, 성균관 교수를 지낸 이용구가 살았던 교수댁, 홍경래 난을 진압한 이용현이 살았던 병사댁, 이중렬과 그의 아들 이용후 부자가 참봉 벼슬을 지내서 이름 붙은 참봉댁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외암 이간의 묘소와 신도비를 비롯해 외암동천(巍岩洞天)과 동화수석(東華水石)이라는 글을 새긴 반석과 석각도 볼 수 있다.
마을 뒷산인 설화산은 풍수지리상 불(火) 기운이 많아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인공적으로 끌어와 여러 집을 통과하게 만듦으로써 불의 기운을 누르는 역할을 하게 했으며 이 물을 생활용수로도 이용하고 정원을 꾸미는 연못을 만들기도 하는 지혜가 돋보인다. 마을 대대로 터를 지키고 있는 물레방아도 재미난 볼거리다.
http://체험마을.한국/
입장료는 어른 2천원, 청소년 천원
여러 해에 걸쳐 계속 얹은 초가집 지붕
짚풀로 작품 만드는 체험 공간
수확과 결실
외암 민속마을은 늦가을 멋진 출사 포인트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전 덜 발전된 모습에 비해 상업성 느낌의 공간들이 생긴 것에는 느낌이 반감되려고 한다.
500년 보호수
깎아 말리는 감들이 매달려 있다.
기념품 팔고 있던 집
허수아비의 모습이 좀 괴기스럽다. 아직도 각인된 이미지는,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