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작은 기도 (정호승 프란치스코, 시인)

by 최유진 posted Jan 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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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올해도 저를 고통의 방법으로 사랑해 주세요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고통의 방법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도록 해 주세요
그렇지만 올해도 저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은 허락하지 마소서

주님
올해도 저를 쓰러뜨려 주세요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저를 쓰러뜨리신다는 것 이제 아오니
올해 저를 거침없이 쓰러뜨리셔서
다시 힘차게 일어나 십자가를 품에 안고 가게 해 주소서

주님
올해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파르르 분노에 떨지 않게 해 주세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하기보다는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소서

주님
올해도 저에게 상처 준 자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용서할 수 없으면 잊기라도 하게 해 주세요
무엇보다도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십자가에 못박혀 손에 못자국이 나기 전에
목수 일로 생긴 노동의 굳은 살이 먼저 박혀 있었던 주님
저로 하여금 올해도 일하기 싫은 마음을 지니지 않게 해 주시고
지하철에서 만나는 가난한 이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동전 하나라도 건네게 하시고
노숙자들한테서 나는 냄새를 싫어하지 않게 해 주소서

주님
올해도 제가 주님께 원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부디 올해는 주님께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도록
오직 주님의 가르침만 따를 수 있도록 해 주소서



-- 서울주보 (2006. 1. 1)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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