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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무슨 생각으로 학교에서 잠만 자냐고요?

 

기사입력 2015-12-16 00:11 | 최종수정 2015-12-16 15:35

 

[모델=혜화여고 3학년 송다영]


꿈(Dream). 이루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무한한 꿈과 가능성을 가진 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장래희망을 얘기하면 ‘성적이 나빠서 안 된다’ ‘점수부터 올리고 보자’는 말부터 합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각이 있는 거냐,없는 거냐’ 나무라고, 선생님은 우리가 왜 수업시간에 자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학을 포기한 건지, 인생을 포기한 건지 몰라 답답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마음껏 꿈꿀 수 없어 그냥 이렇게 꿈이라도 꾸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교생 100명이 말하는 꿈과 고민
넌 뭐든 할 수 있다면서 꿈도 성적에 맞추라네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한 개그 프로그램에 나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던 유행어다. 이 말처럼 한국에서는 1등이 아니면 인정받기 어렵고, 경쟁이 과열돼 있어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지난 2일 수능 성적이 발표된 후엔 수능 만점자가 전국적인 화제였다. 학교에선 최상위권 학생이 교사의 관심과 애정을 독차지한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최상위권이 아니다. 일반고 8곳과 지역 자사고 1곳에 재학 중인 학생 100명을 만나 그들의 고민을 물었다. 최상위권 학생부터 하위권 학생들까지 다양하게 만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교육 정책을 바꾸는 정부에 대한 불만부터, 성적으로 학생을 편애하는 교사까지 마음속에 담아 놓은 말이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 1인칭으로 재구성했다.


2009년 입학사정관제 시행으로 진로탐색 중요성 커져
“일관성 가져라”“구체화시켜라”꿈에 대한 주문도 많아
적성 파악 후 진로 찾는 게 아니라 ‘대입’용 직업 찾기로 전락


“지현아, 2교시 끝났어. 매점 가자.” 짝꿍 혜지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 또 잤다. 아침에 분명히 담임쌤 얼굴 본 건 기억이 나는데 언제 잠든 건지 나도 미스터리다. 신기한 건 또 있다. 잠깐 눈 감았다 뜬 것 같은데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수업 중에 졸면서 체감하는 시간의 왜곡에 대해 연구하면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이 아닐까 싶다.

시간표를 보니 1교시 ‘한국사’, 2교시 ‘독서와 문법’이었다. 2시간 동안 한 번도 안 일어나고 내리 잔 걸 보면 그 누구도 나를 깨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나 보다. 어떤 쌤들은 수업시간에 자면 “반항하는 거냐”면서 무조건 벌점을 주기도 하는데, 다행이다.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든 게 왜 선생님한테 반항을 하는 행동으로 비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버스에서 잠깐 조는 게 ‘버스기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는 아니지 않나. 혼나지 않아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선생님들이 나를 포기한 것 같다.

요즘 들어 아침 일찍 학교에 오는 게 부쩍 힘이 든다. 학원 개수가 3개로 늘면서 수면시간도 줄고, 체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중학교 때는 시험기간에 며칠 동안 밤새 공부해도 끄떡없었는데, 요즘에는 하루만 새벽에 자도 3일간 힘들다. 학교에서 ‘탄력등교제’를 실시하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어른들은 육아, 자기계발, 가사분담 등을 위해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탄력근무제 시행하면서 왜 우리는 일률적으로 똑같이 아침 일찍 나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대입만을 위한 꿈

“담임쌤이 학생부 마감한다고 진로희망사항 내래.” 혜지의 말에 마시던 우유를 뿜을 뻔했다. 또 그때가 다가왔다는 말인가. 12월이니 이른 건 아니다. 내년에 고3이 되는 것보다 당장 내일까지 진로희망사항 적어 내는 게 더 걱정이다. 진로희망사항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장래희망을 기록하는 란을 말한다. 특기 또는 흥미,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진로희망, 희망 사유 등에 대해 간단히 적으면 된다. 꿈을 정하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충 아무거나 써냈다가는 대학에 못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꿈을 구체화시키는 과정도 필요하다. 대학이 이 부분을 중요하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꿈이 있는 사람도 1학년 때는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쓴다. 예컨대 이과 학생은 1학년 때 연구원, 2학년 때 생명과학연구원, 3학년 때 줄기세포연구원이라고 기재하고, 문과학생은 1학년 때 작가, 2학년 때 시나리오작가, 3학년 때 게임시나리오작가라고 적는 식이다.

특히 중간에 장래희망을 바꾸면 안 된다. 1학년 때 꿈이 교사였던 사람이 2학년 때 진로를 ‘의사’로 설정하면 아프리카 오지에서 여름방학 내내 의료봉사활동을 하지 않은 이상 입학사정관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들었다. 1학년 때 쓴 진로에서 웬만하면 안 바꾸는 이유가 여기 있다. 순서가 완전 뒤바뀌어 있다. 적성을 파악하고 진로를 탐색하는 게 아니라, 장래희망의 기본 틀을 정하고 거기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이니 말이다. ‘백년지대계’여야 할 교육제도는 사흘이 멀다 하고 바뀌는데 우리 꿈은 일관성 있게 유지하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내가 산 18년의 세월 동안 앞으로 평생 뭐하고 살지 담판을 지으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18년 중에 자아가 형성되고, 스스로 미래에 대해 고민한 건 6년이 채 안 되는데 말이다. 정말로 100세 시대가 온다면 남은 인생이 82년이다. 역사학자, 정신과 의사, 방송PD, 심리상담가, 기자 등 하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지금 당장 꼭 하나를 정하라니 너무 어렵다. 내 나이와 똑같은 숫자로 된 비속어가 머릿속에 마구마구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모순인 게 많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진로탐색을 하라는 것부터가 그렇다. 초등학교 때 역사과목을 좋아해 ‘동북공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먹고 살기 어려울 테니 포기하는 게 낫다’더라. 또 ‘너희는 하얀 도화지처럼 뭐든 될 수 있다’면서 정작 하고 싶은 걸 말하면 ‘성적이 안 돼 불가능하다’고 한다. 1학년 때 또래상담에 재미가 들려 잠깐 정신과 의사를 꿈꿨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담임쌤이 “이 성적으론 어림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하더라. 인기 있는 직업 줄 세워 놓고 성적순으로 하나씩 배정해주면 될 걸 꿈은 왜 우리보고 찾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성적이 안 되면 쳐다볼 수도 없는데 말이다.

2학년에 올라오면서 문·이과를 정할 때도 애를 먹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민했는데, 답이 안 나왔다. 적성검사를 해봐도 문·이과 성향이 딱 반반이었다. 융합교육 한다면서 문과, 이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중학교 때 꿈이 방송PD라 결국은 문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1학년 때 담임쌤 반대가 상상을 초월했다. 담임쌤은 매일같이 나를 불러 “이과로 가도 PD 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요즘 이과가 대세다. 문과에서 3등급 하면 서울에서 갈 대학이 없지만, 이과에서는 홍익대 간다고 들었다. 문과 오니까 완전 찬밥 신세다. 어떤 쌤들은 2학년 첫 수업에 들어와서 “대학 가기도 어렵고, 취업도 어려운 문과에 왜 왔느냐”고 대놓고 무시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콱 막힌다. 이과가 취업도 잘 되고 하니 학교에서는 웬만큼 수학·과학 성적이 나오는 학생은 죄다 이과로 몰아넣는다. 애들은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등 떠밀려 계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대입만을 위한 스펙

우리는 대입에 맞춰진 인생을 살고 있다. 동아리도, 학교생활도, 공부도 모두 대입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모든 건 2009년에 본격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도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으로 명칭이 달라졌다. 대학에서 70% 이상을 수시로 선발하는데, 학종이 그 절반을 차지한다. 결국 대학에 들어가려면 학종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이와 같은 제도의 시행이 반가웠다.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과 잠재력을 평가한다고 하니 안 좋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학종 때문에 내신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다양한 스펙 쌓느라 고군분투해야 한다. 억지로 꿈을 찾아야 하고, 그에 걸맞은 동아리 활동, 교내 대회 수상, 독서, 봉사활동 등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수능을 포기할 수도 없고, 논술전형도 준비해야 한다. 한 마디로 수퍼맨이 되라는 얘기다. 차라리 수능이나 학력고사만으로 줄 세워서 대학가는 게 낫다고 말하는 애들이 많다. 내 생각에도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게 속 편할 것 같다.

학종이 차라리 스펙만 필요한 전형이면 모르겠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학종 추천서를 써주는 기준은 철저하게 내신 성적이다. 학교에서는 대학 합격 가능성이 높은 최상위권 학생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좋은 스펙이 있어도 내신 9등급 받으면서 SKY에 합격하는 건 스티브 잡스가 환생해서 우리나라 고등학교에 입학해도 불가능하다.

학종에서 비롯된 가장 큰 문제가 학생부다. 모든 학생들은 학생부의 노예다. 학교에 공부하러 다니는 건지, 학생부 기록하러 다니는 건지 헛갈릴 정도다. 선생님들도 이걸 아니까 우리를 관리하는 도구로 이용한다. 수업시간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다가도 “상점 준다”거나 “학생부에 들어간다”고 하면 저마다 손을 들고 발표하느라 야단이다. 여름에 교실 안에 들어온 벌레 퇴치도 ‘학생부에 적어준다’고 하면 경쟁이 치열할 거다. 쌤이 차라리 학생부 기록 여부를 아예 밝히지 말고 애들을 평가하면 좋겠다. 학생부에 집착하다 보면 선생님이 종이로 보일 때도 있다.

이를 악용하는 쌤도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대입을 포기하지 않은 이상 쌤한테 억울한 일 당해도 찍소리도 못한다. 잘못했다가 학생부에 무슨 소리 적을지 몰라 두렵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떠들지도 않았는데 ‘수업에 방해된다’고 벌점을 받거나, 앞머리 쓰다듬었다고 억울하게 혼이 나도 우리는 쌤에게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절대 ‘을’이다.

학생부 때문에 친구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조별 과제 할 때는 저마다 조장 하려고 난리다. 하지만 좋은 평가는 받고 싶으면서 맡은 일은 제대로 안 하고 ‘무임승차’하는 애들이 많다. 자기 일은 어떻게 해서든 줄이려고 하면서 점수만 받으려고 한다. 그런 애들 볼 때마다 정말 열이 뻗친다.

교내대회나 동아리 활동도 대입에 활용할 스펙 쌓기일 뿐이다. 오히려 학생부에 기록 안 되거나 진로와 관계없는 활동하면 바보 취급당한다. 대회가 의미 있어서 참여해보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학생부에 한 줄 적을 스펙 만드는 게 유일한 목표다. 동아리도 마찬가지다. 1학년 때 수학동아리에 참여했는데, 2학년 때 문과 오면서 그만뒀다. 선배와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올림피아드와 같은 고난도 수학문제 풀고, 직접 수학문제도 만들어보는 등 활동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문과니까 수학동아리 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하더라. PD가 되려면 방송제작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의 노예’
학생부 기록 안 되거나 진로 무관한 활동하면 바보 취급
“쌤, 좋은 대학 못 가도 관심 좀 가져 주세요”


우리는 대학가는 기계 아니에요


사실 대학을 왜 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을 가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대학에 가야만 사람 취급받는 문화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이미 기성세대들이 짜놓은 틀에 우리가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을 뿐이다.

대학이 사람 취급받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미 교육제도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얽히고설켜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공교육은 망했다. 국내 학생 중에 사교육을 안 받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교육부에서 정책 만들 때 제발 학생들 의견 좀 들어봤으면 좋겠다. 교육과정도 결국 학생들의 문제인데 항상 우리 얘기는 0.1%도 반영이 안 되는 현실이 슬프다. 정부나 대학에서 그렇게 정하면 우리는 따라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학교 쌤들이 우리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대학가는 기계, 실적으로 보는 것도 불쾌하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교대 간다고 하면 싫어한다. 서울대 실적이 줄어들어서다. 성적으로 우리 차별하는 것도 짜증 난다. 상위권 학생들만 대상으로 몰래 대회를 열 때가 많다. 학교에는 우리 몰래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 알게 돼 있다. 나중에 그런 거 알면 자존심도 상하고 상처받는다. 우리는 아직 18년밖에 안 살았는데 인생에서 패배자가 된 기분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공부 잘하는 애들만 챙기는 걸 알게 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성적이 나쁘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쌤들이 우리 신경 안 쓰고 무시하면 ‘공부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하지만 진심으로 우리를 신경 쓴다는 게 느껴지면 더 열심히 해서 우수 그룹에 들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학생을 차별 없이 대했으면 좋겠다.

자유롭게 꿈꾸고 싶어요

중학교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던 엄마나 아빠랑은 이제 부딪힐 일이 없다. 확실히 중2 때는 뇌에서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화학작용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이 되니 부모님과 다툴 시간적 여유도 없다. 오전 8시에 학교 가서 오후 11시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거나 학원에 간다. 15시간 동안 학교에 있을 때도 많다. 집에서는 잠만 잔다. 하숙생이 된 느낌이다.

중학교 때는 끔찍하게 싫었던 부모님 잔소리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남들보다 앞선 출발점에 서려면 대학을 잘 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스펙을 쌓아도 나보다 더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애들이 많다. 미래는 불안하고, 막막하다. 내가 내 인생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렵다. 계속 고등학생이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머리가 아프다.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가 보다. 그럼 또 잠이 온다.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눈꺼풀이 무겁다. 쌤 목소리의 볼륨이 점점 줄어든다. ‘자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 되는데.’ 나는 이렇게 오늘도 꿈을 꾼다.


부모의 마음
파김치 된 널 보면 안타깝지만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세븐일레븐.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의점 얘기가 아니라 첫째 딸이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시간이다. 아이는 오전 7시에 나가서 오후 11시에 온다. 수업이 끝나면 학원을 가거나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한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파김치처럼 축 처져있다. 하루 중에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은 고작 30분 내외다. ‘학교 안 가겠다’ ‘파마하겠다’ ‘건드리지 말라’면서 목에 핏대 세우며 대들었던 중2 때가 오히려 그립다.

 공부하느라 애쓰는 아이를 보면 안쓰럽고 짠하다. “왜 꼭 대학에 가야 하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중3 때 희망했던 대로 미디어고(특성화고)에 갔으면 훨씬 더 재미있는 학교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원망을 쏟아놓을 때는 미안한 마음도 있다. 가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줄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특성화고에 대한 시선이 예전보다 달라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고등학교에 진학했어도 대학엔 가야 한다. 성적이 5등급 이하여도 말이다. 수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안 되면 논술, 논술이 안 되면 정시에서라도 집에서 다닐 수 있는 대학에 보내고 싶다. 대학 간판이 우리 사회에서는 끼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아이가 좀 더 나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답답한 건 부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결국 공부는 아이 스스로 하는 거니 말이다. 요즘에는 수시 비중이 커지면서 학교생활까지 지옥으로 변했다고 하더라.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진로탐색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챙길 게 많단다. 아이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우리 때는 고등학교 졸업은 물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 자신의 미래를 그려본다는 건 분명 멋진 일이 아닐까 싶다. 대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부디 지금의 경험이 아이를 좀 더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길 바랄 뿐이다.


교사의 마음
내신·수능·비교과에 바쁜 너희들 … 본의 아니게 상처줘서 미안해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수업시간에 질문을 던지면 다음 상황은 안 봐도 비디오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정적이다. 이때 한 마디를 덧붙이면 상황은 180도 바뀐다.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에 적어줄게.” 그럼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 하면서 대답하겠다고 난리다.

 학생부가 언제부터 교사의 권위를 세우는 도구가 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부를 활용해 아이들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 체벌도 사라진 마당에 학생부도 없었으면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어떻게 통제했을지 모르겠다.

 사실 아이들이 너무하다 싶을 때도 있다. 무슨 말만 하면 “상점 주느냐” “학생부에 적어주느냐”부터 물어본다. 내가 학생 때는 아무런 소득이 없어도 무조건 선생님 말씀을 들었는데, 요즘 애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약간 씁쓸하다.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나 아이들의 순수함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다.

 수업시간에 자는 애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초반에는 ‘반항하는 건가’ 싶어서 자는 애들을 일일이 깨웠다. 하지만 자는 애들 깨우는데 10분 이상 걸린다. 50분 수업에서 10분은 크다. 자는 애들 때문에 나머지까지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요즘에는 그냥 내버려 둔다. ‘전날 밤늦게까지 공부했겠지’라고 생각하면 속도 편하다.

 그래도 내 수업은 조금 나은 편이다. 3분의 2 이상은 수업을 듣는다. 일부 교사의 수업은 듣는 학생이 5명 이하일 때도 있다더라. 수업의 질에 신경 쓰지 않고 교과서만 줄줄 읽는 수업일 경우엔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더 나쁘다. 사실 경쟁력을 잃은 교사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도 많다. ‘교사도 학원 강사들처럼 경쟁했으면 좋겠다’는 학생들의 얘기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조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요즘 애들 얼마나 바쁘냐. 내신 공부하기도 부족할 텐데 동아리 활동도 해야 하고, 진로도 찾아야 하고, 경시대회도 나가야 한다. 또 수능과 논술도 준비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성적으로만 줄 세우는 입시 정책이 문제라고 판단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건데, 그게 오히려 학생의 부담만 키우고 있다.

 학교에서는 입시 실적을 올리는 데 신경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학생들을 자극하느라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이 왜 “우리를 대학 가는 기계 취급하느냐”고 따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학생의 개성을 존중하고, 수업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교사들도 많다고 말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257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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