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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고 추천받은 기대감은 우선 만화책을 후르르~ 펼쳐 보고 그림을 잘 그리는지 첫인상을 살피게 한다.  재밌다고 하는데 그림이 영 땡기지 않는 경우 재미도 반감될까봐... 98년 판 정도 되는데 약간 옛날 만화같은 분위기에 그림은 별로 복잡하지 않고 무엇보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은 키가 작고 뚱뚱하고 (사실은 통통한) 못 생기고 머리도 별로고 가진 것도 물론 없는 애였다.  내 취향엔 그럭저럭 그리는 듯했지만 기존의 갸녀리고 이쁜 여자애들이 아닌 너무나 땅딸한 여자애가 주인공으로 나오니 무슨 환타지 쟝르인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현대물은 한마디로 주변에 이런 애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과 짜증나겠다는 두부류의 주인공 캐릭터로 나뉘는 거 같다.  읽을수록 좋아서 매력이 느껴지는 캐릭터와 바보같이 착하기만 해서 내내 당하고 나까지 화나는 그런 캐릭터...  바로 이 작품 <장미를 위하여>의 여주인공 유리는 전자에 해당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해피>의 여자앤 후자에 해당하고...  유리는 외모로 인해 열등감과 콤플렉스가 심하지만 무지 착한 심성과 명랑함으로 인해 내내 가족과 남을 위해 희생하다 해피엔딩을 이룬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은 하필 내가 동경해 마지않는 일본의 북해도 삿포로시, 그 외 새겨뒀던 지명까지...  작가는 대신 섬세하고 자세하게 배경을 그리진 않는다.  봄엔 갖가지 꽃이 만발하고 7월 초까지 내내 서늘하고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길고 춥고 눈이 자주 오는 바로 작가가 사는 장소이므로 괜히 나까지 친숙하게 만드는 친화력을 느꼈다.  그리고 짧게 삽입되어 있는 작가의 일기를 읽으면 주인공 유리와 비스름한 점들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그 외, 이 작품에 반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시종일관 따뜻함이 느껴지고 재밌고 코믹하다.  마치 '남 얘기가 아닌 듯' 공감을 일으키는 유리의 통통한 몸매는 엇갈리고 쟁취하는 사랑의 갈림길에서 다이어트가 중요한 소재를 차지하고 있다.  16권에까지 이르는 긴 호흡 동안 처음 읽을 때는 표면적인 재미와 줄거리 때문에 허겁지겁 결과를 중시하게 되지만 두번 읽을 때 주인공들의 내면 심리에 포커스를 맞추고 읽으면, 그 어느 집이나 사람보다 특별한 가족관계로 맺어진 주인공들의 입장이 하나하나 공감을 준다는 것이다.

유명한 여배우인 엄마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 사이에선 자식을 못 가지고, 사랑을 잃어 버린데 반항하듯 모두 다른 아버지의 자식을 낳기만 하고 기르진 않는다.  자식들은 모두 아버지가 다르며 각자의 아버지가 버린 후 어느날 갑자기 엄마 집으로 하나씩 모이게 되는데 전혀 같이 살거나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오빠, 언니, 동생, 형으로 만나 피상적인 가족을 이루며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관계를 이루다 -- 물론 엄마는 계속 외도를 거듭하고 자식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데 -- 유리라는 공통분모의 동생이 이 모든 차가운 관계를 따뜻하게 녹이면서, 그것도 반쪽씩 밖에 나누지 않은 가장 가까운 가족, 형제관계를 회복해 나간다.  바보같은 열등감은 뒤로 갈수록 유리의 놀라울 정도의 성숙함으로 변하며 처음엔 적이었던 주변의 모든 사람을 하나 하나 친구로 만드니까..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후요우 언니는 이혼한 장녀 답게 이기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사람의 심리를 집어낸다.  오빠 스미레는 외국인 아버지로 인해 파란 눈을 감추기 위해 집에서까지 썬글라스를 끼면서 코믹하고 좀 평범하지 않은 성격이지만 사랑하던 여인의 죽음으로 인해 그늘을 가지고 있지만 열정적인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갈망하고 있다...  아버지가 같은 남동생 아오이는 만나 보지도 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라고 얽는 것은 폭력에 지나지 않으며 혈연에 대해 범상치 않은 사고 방식을 가지고 가장 먼저 유리의 매력과 장점에 빠져 버린다.  독자들은 아마 스미레보다는 아오이를 더 좋아할 만하다.  반쪽짜리 동생이라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니까.  가장 나중에는 풀기 힘들었던 엄마와의 관계까지 북해도의 눈처럼 녹이고 나서 저마다의 꽃봉오리를 피우는...

장미를 비롯하여 온갖 꽃의 모티브가 자주 등장하는데, 가시가 있고 도도해 보여서 주변을 굴복시키는 거 같은 이기적인 장미란 어차피 편견이며 다른 야생 꽃들도, 야채도, 과일도 저마다의 아름다운 몫이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유리는 범접할 수 없는 외모의 고귀한 장미가 아니라 은은한 향기가 있는 야생장미에 비유된다.  유리, 스미레, 아오이도 모두 꽃이름.

뭐랄까..  작품에 대한 애정도가 깊어갈수록 비록 만화지만 서평을 쓰기도 조심스럽다.  어떻게 하면 그저 내 일기에 그 묘미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  무엇보다 유리의 외모를 보면 콤플렉스가 된 나의 입장과 겹쳐지면서 유쾌한 공감대를 이루고 밝고 착한 심성으로 인해 주변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장점과 능력은 엄청난 매력을 발산한다.

아쉽다.  주인공들의 번외편을 그리진 않나 기대감을 가지게 되고, 이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은 어떤 것인지 흥미를 가지게 한다.  장미보다 소박하면 어떠리.  꽃은 모두 아름답고 저마다의 꽃은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는데...  이 세상은 얼굴이 잘 생기고 예쁘고 키 크고 날씬하고 똑똑한 사람만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작고 뚱뚱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동물도 모두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조물주의 특권을 가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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