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서북부 문화탐방

by 최유진 posted Jun 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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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서북부 문화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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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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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화가 구본웅과 친교.  

이상 (1910 ~ 1937)

본명은 김해경.  세살 때 부모 슬하를 떠나 통인동 154-10번지 백부 집에서 생활.  보성고 졸업 후 경성고등공업학교 진학. 1929년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취직.  1931년 폐결핵 --> 배천 온천 요양 --> 금홍을 만나 제비 다방 차림 --> 평남 성천 요양을 거쳐 1936년 결혼.  1937년 일본 도쿄 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사망.  1934년 구인회에 가입하여 순수소설을 썼으며, <오감도>, <날개>, <종생기> 등을 써서 한국 문학을 현대문학의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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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관. 실내 촬영 불가.

문학관 입장후 용정촌에서 가져 온 우물 유구가 전시되어 있다.  생애 영화를 15분 마다 상영해 준다.

윤동주:  북간도 명동 출생 (1917년).  은진중 (용정중)을 거쳐 연희전문 진학.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할 때 인왕산을 늘 올라다녔슴.  문과 졸업 기념시집으로 1941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3부를 만들어 이양하 은사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본인이 1부 가지고 있었슴.  일본 도지샤대학에 유학하여 영문과에 다니던 중 1943년 검거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  1945년 2월 감옥에서 죽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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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언덕.  

서시는 조선어라서 발표를 못하고 후배 정병욱이 학도병으로 나가기 전 모친에게 보관 맡긴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 민족시인으로서의 애국심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정체모를 주사를 계속 맞고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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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봉우리는 나무 숲들로 시야가 가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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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집터.  (뒷쪽 안평대군 집터)

현진건 (1900 ~ 1943)

대구 출생.  일본 도쿄외국어학교 독일어학과, 중국 상하이 후장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유학.  1922년 '백조' 동인으로 활약했다.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불림.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시절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1년간 복역.  이후 부암동 구가에서 양계업을 하다 실패.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B 사감과 러브레터' '할머니의 죽음' '무영탑' '적도' '흑치상지' 등의 소설을 썼다.  현진건의 딸이 박종화의 아들과 결혼하여 현진건과 박종화는 사돈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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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 집터 앞 무계정사가 있던 곳.  세종대왕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 이용의 별장이 근처에 있으며 이 곳에서 사병을 키웠지만 수양대군에 의해 김종서, 황보인 등이 제거 되면서 죽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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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의 별장이었는데, 대원군이 집권 후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

건물 앞산이 모두 바위여서 석파정이라 함.  본래 7채의 건물이었으나 1997년 서울미술관이 인수 개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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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별당.

1958년 석파정이 헐릴 때 화가 겸 서예가 손재형씨가 별당을 인수하여, 벽돌 한장 한장에 번호를 매겨 뒤바뀜이 없게 옮겨와 자택을 지으면서 뒤꼍 위에 자리 잡아 지었슴.  손재형은 1944년 추사의 '세한도'가 일본인 동양 철학자 후지스카 지카시가 소장한 것을 삼고초려 끝에 가져 와 전란을 면하게 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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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1892 ~ 1950) 별장터

1907년 메이지학원 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함.  졸업한 뒤 오산학교 교원이 되었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일함.  1910년 '어린희생' 발표.  1917년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무정'을 발표하여 최남선과 함께 신문학 개척기의 선구자가 되었다.  1929년 '단종애사' 이후 '사랑' '유정' '꿈' '마의태자' '원효대사' '흙' 등을 집필하였다.  춘원 이광수가 약 530제곱미터 터에 목재와 벽돌을 이용해 손수 지은 연면적 221.18제곱미터 규모의 기와집이다.  그가 1934년부터 5년 동안 이 집에서 살았으며 이곳을 자하문산장이라고 불렀다.  이 집의 매입자 (김재철)가 개보수를 거쳐 복원했으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등록문화재 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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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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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모임터, 게스트하우스 등으로도 운영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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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집필하던 방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4172&cid=40942&categoryId=33384

이광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2179&cid=46645&categoryId=46645

이상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4049&cid=41708&categoryId=41737

현진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3499&cid=59011&categoryId=59011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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