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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있는 사도세자 (장헌세자, 장조) 융릉과 정조 건릉 방문

 

http://royaltombs.cha.go.kr/tombs/selectTombInfoList.do?tombseq=163&mn=RT_01_13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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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도 그림, 오른쪽의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합장릉인 융릉.  왼쪽으로 정조와 왕후 합장릉 건릉

왕릉은 2기이지만, 25만평에 달하는 이 곳은 원래 수원읍성 자리로서 관아와 백성들이 중심으로 살고 있던 지역이었다.

당파 싸움의 희생이 된,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불쌍한 인물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효심으로 가득찬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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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해설사 설명 듣기 전 역사문화관 들르다.  사도세자 묘의 이름은 수은묘 --> 영우원 --> 현륭원 --> 융릉

원래 동대문구 휘경동 지역에 조성되었던 것을, 정조가 즉위하면서 사도세자는 '장헌세자'로 올리고 영우원으로 바뀐 후, 지금 명당으로 다시 천장하여 현륭원으로 바뀌고, 대한제국 고종 때 융릉으로 높여 대우하였다.  그래서 비각이 정조 때와 고종 때 2기가 있다.  사도세자묘는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능, 원, 묘라는 명칭을 모두 거친 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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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은 장조의황제 (사도세자)와 현경의황후 홍씨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  건릉은 장조의 아들 22대 정조와 효의선황후의 합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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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입구에 재실이 있다.  수령 110년 정도의 향나무의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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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와 봤지만 융건릉 대지가 엄청 넓고 시원하고 키가 큰 소나무들이 아주 정갈하게 늘어져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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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앞 금천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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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모양의 연못 곤신지. 조선시대 연못은 '천원지방'에 의해 네모난 모양이지만 이곳은 원형이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나는 꿈을 꾼 정조의 명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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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앞 홍살문

 

융릉은 추존 장조의황제와 헌경의황후 홍씨의 능으로 합장릉의 형태이다. 융릉은 1789년(정조 13)에 배봉산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현륭원(顯隆園)으로 이름을 바꾸고 원을 다시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수라간,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비각 안에는 두 기의 표석이 있는데 1기는 조선시대에 세운 조선국 표석(조선국 사도장헌세자현륭원)이고, 1기는 대한제국시대에 세운 황제국 표석(대한 장조의황제 융릉 헌경의황후 부좌)이다.
능침은 난간석을 생략하고 병풍석만 둘렀으며, 병풍석의 면석은 인조의 장릉(長陵)의 형태를 따랐고, 인석은 연꽃형태로 조각한 것이 독특하다. 그 밖에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특히 문석인은 복두를 쓴 일반적인 왕릉형식이 아닌 금관조복을 입고 있다.
공간 구성 상의 특이점 중 또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정자각과 능침이 이루는 축이다. 대개의 왕릉에서 정자각과 능침이 일직선상에 축을 이루는 반면 융릉은 일직선을 이루지 않고 있다. 홍살문의 오른쪽에는 원형의 연못인 곤신지(坤申池)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풍수적 논리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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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선왕릉은 정자각에 정면에서 잘 보이지 않는데 사도세자의 묘는 비스듬히 놓여 있어서 잘 보인다.  명당이며, 길지이므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1762년(영조 38)에 장조(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묘의 이름은 수은묘(垂恩墓)라 하였으며, 1776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장헌세자라는 존호를 올리고 묘를 원으로 격상하여 이름을 영우원(永祐園)이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원을 현재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다. 1815년(순조 15)에 헌경의황후(혜경궁)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816년에 현륭원에 합장으로 원을 조성하였다. 그 후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년에 사도세자가 추존되자 능으로 격상되어 융릉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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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들에 비해 향로와 어로 양쪽으로 박석이 더 넓다.  왼쪽에 있는 것은 수복방이라고 한다.  수라간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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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장조의황제)와 왕후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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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 가는길은 더욱 아름답다.  상쾌한 소나무 향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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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가득한 융건릉.  가을에도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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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 김씨의 합장릉 '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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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은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이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수라간,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능침은 융릉과 비슷하지만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그 밖에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1800년(정조 24)에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 장조의 현륭원(융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순조가 왕위에 오른 후 건릉 불길론이 있었고, 1821년(순조 21)에 효의선황후 김씨가 세상을 떠나자 건릉 천장이 결정되었다. 이후 현륭원 서쪽 언덕으로 능자리가 결정되면서 합장릉의 형태로 능을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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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나오면서 재실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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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 마당에 천연기념물 '개비자나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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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머금은 향나무는 지지대에 기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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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 마당 뒷쪽에 있던 꽃나무인데 수국인 줄 알았다가 네이버 렌즈로 찾아 본 꽃, 불두화.  평생 수국으로 알았을 뻔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

장조의황제(재세 : 1735년 음력 1월 21일 ~ 1762년 음력 윤5월 21일)는 영조와 영빈 이씨의 아들로 1735년(영조 11)에 태어나 1736년(영조 12)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3세가 되었을 때 이미 『효경』을 외울 정도였으며, 수시로 글을 쓰고 시를 지어 대신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다. 다양한 방면에서 왕세자로서의 뛰어난 면모를 갖춰 부왕인 영조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1749년(영조 25)에 영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하자, 그를 경계하는 노론 벽파 대신들이 왕세자를 모함하여 영조와 왕세자 간의 갈등이 비롯되었다. 특히 1762년(영조 38)에 형조판서 윤급의 청지기였던 나경언이 세자의 비행을 고하는 상서를 올리자 크게 노한 영조는 나경언을 처형하고, 왕세자에게 자결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왕세자가 명을 따르지 않자 영조는 왕세자를 폐서인 한 후 뒤주에 가두었다.
『영조실록』 1762년(영조 38) 5월 13일의 기사에는 아버지인 영조가 왕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게 되는 비극의 시작이 다음과 같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나경언이 고변한 후로부터 임금은 왕세자를 폐하기로 결심하였다. 임금은 창덕궁에 나아가 세자에게 휘령전(정성왕후의 혼전)에 예를 행하도록 하였다. 임금이 행례를 마치고, 세자가 뜰 가운데서 사배례를 마치자, 궁성문을 굳게 막고 사람의 출입을 금한 후 세자에게 명하여 땅에 엎드려 관(冠)을 벗게 하고, 맨발로 머리를 땅에 조아리게 하고 이어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전교를 내려 자결할 것을 재촉하니, 왕세자의 조아린 이마에서 피가 나왔다. 세손(정조)이 들어와 관과 포를 벗고 왕세자의 뒤에 엎드리니, 임금이 안아다가 시강원으로 보내고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칼을 들고 연달아 전교를 내려 왕세자의 자결을 재촉하니, 왕세자가 자결하고자 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말렸다. 임금은 이어서 폐하여 서인을 삼는다는 명을 내렸다. 군병을 시켜 신하들을 내쫓게 하였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한림 임덕제 마저 강제로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왕세자는 임덕제의 옷자락을 붙잡고 곡하면서 따라 나오며 말하기를, “너 역시 나가버리면 나는 장차 누구를 의지하란 말이냐?” 하고, 전문에서 나와 춘방의 여러 관원에게 어떻게 해야 좋은가를 물었다. 왕세자가 곡하면서 다시 들어가 땅에 엎드려 애걸하며 개과천선하기를 청하였으나 임금의 전교는 더욱 엄해지고 드디어 왕세자를 깊이 가두라고 명하였는데, 세손이 황급히 들어왔다. 임금이 왕세자빈, 세손 및 여러 왕손을 좌의정 홍봉한의 집으로 보내라고 명하였는데, 이때에 밤이 이미 반이 지났었다. 결국 뒤주에 가둔지 8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자신의 행동을 곧 후회하고, 애도하는 뜻에서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 후 1776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장헌세자라는 존호를 올렸으며, 1899년(광무 3)에는 왕으로 추존되어 묘호를 장종이라 하였다가 곧 바로 황제로 추존되어 장조의황제라 하였다..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

정조선황제(재세 : 1752년 음력 9월 22일 ~ 1800년 음력 6월 27일, 재위 : 1776년 음력 3월 10일 ~ 1800년 음력 6월 27일)는 추존 장조와 헌경의황후 홍씨의 둘째 아들로 1752년(영조 28)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다. 1759년(영조 35)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762년(영조 38)에 아버지 장조의 죽음을 목격하는 일을 겪었다. 1762년에 영조는 정조에게 왕위 계승의 명분을 주기 위해 일찍 세상을 뜬 첫째 아들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게 하였다. 1775년(영조 51) 부터는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였으며, 이듬해인 1776년에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먼저 아버지 장조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노력하였으며, 왕권을 위협하는 노론 벽파를 정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규장각 설치, 신해통공(금난전권 폐지 등) 실시, 신분의 제약 없이 능력과 학식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임진자 등을 새로 만들어 인쇄술의 발달을 기하고, 『증보동국문헌비고』등 많은 서적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이론이 중시되는 학문에 치우치지 않고, 실학을 발전시켰으며, 조선 후기의 문예 부흥기를 가져왔다. 가난한 백성의 구제를 위해 자휼전칙을 공포하고, 제도 개편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후 1800년(정조 24)에 창경궁 영춘헌에서 49세로 세상을 떠났다. 순조는 묘호를 정종(正宗)이라 올렸으며,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에 고종의 직계 5대 조상 추존으로 정조선황제로 추존되었다.
정조는 아버지 장조의 원(영우원)을 지금의 자리인 현륭원(융릉)으로 이장하면서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으며 1790년(정조 14)에서 1795년(정조 19)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다. 그 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다. 1796년(정조 20)에 화성을 축성한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576칸 규모로 건립하였으며, 그 전까지는 1789년(정조 13) 수원읍치를 화산에서 팔달산으로 옮기면서 관아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행궁으로 고쳐 지은 후에도 평상시에는 화성부 유수(留守)가 집무하는 내아(內衙)로 활용하였다. 정조는 1789년(정조 13)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 이후 이듬해 2월부터 1800년(정조 24)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을 거행하였다. 이때마다 정조는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화성행궁은 성곽과 더불어 단순한 건축 조형물이 아니라 개혁적인 계몽군주 정조가 지향하던 왕권강화정책의 상징물로 정치적, 군사적인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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