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 경주모임 2일차: 경주 남산

by 최유진 posted Nov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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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는 남녀 따로 방에서 각자 드시고. 

 

경주 남산으로 출발. '삼릉가는 길' 걷기

 

 

경주남산은 그 자체가 불교미술관이다.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高位山)의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해서 남산이라고 한다. 금오산의 정상의 높이는 466m이고, 남북의 길이는 약 8㎞, 동서의 너비는 약 4㎞이다....

동남산과 서남산에는 각각 16개의 계곡이 있고, 남쪽의 2개와 합하여 모두 34개의 계곡이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유적의 숫자로 보면 서남산쪽이 동남산보다 월등히 많다. 이 계곡들에는 석탑·마애불·석불·절터 등이 산재해 있으며~~ (생략)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태어난 곳이 남산 기슭의 나정(蘿井)이며, 불교가 공인된 528년(법흥왕 15) 이후 남산은 부처님이 상주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숭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경주남산(慶州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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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계곡 중, '삼릉골' (삼릉가는 길: 서남산주차장에 차 세우고, 길 건너 삼릉숲 입구로 출발. 삼릉 --> 배동 불상 --> 포석정 --> 나정까지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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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부터 월정교 혹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종점이지만, 큰 도로변이 아닌 삼릉숲부터 들어가서 숲속 길을 탐방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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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분위기 삼릉숲.

구불구불 소나무의 도열은 아주 오래 전 이 땅을 번영시킨 왕들에 다가서기 위해,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를 갖추도록 준비하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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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능이 모여 있다고 해서 삼릉이라 불린다. 

근처에는 경애왕릉이 있다. 안개가 끼면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라고 하는데, 주로 소나무 숲 사진 전문인 사진작가 배병우님이 여기 삼릉숲 사진으로 유명해 진 듯 하다.  방문했을 때도 그림그리는 분들 몇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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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사 경내

특이하게 탑이 조그만 연못 위에 세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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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사. 망월사, 삼불사 보다 근처 배리삼존불상입상을 보기 위해 들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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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 높이 2.78m, 좌협시보살 높이 2.35m, 우협시보살 높이 2.36m.

7세기 초에 신라에서 만들어진 석조 불상 3점으로, 원래는 조선시대에 선방사곡 입구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것을 1923년에 현재와 같이 정비한 것이다. 불상 앞에 기도하는 신도들이 있어서 여러 컷 못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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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선방곡 제1사지 석재유구

1926년 주변에서 '건부육년선방사탑연치내기'라고 새겨진 돌이 발견되어서 이곳을 선방사로 추정하고 있다. 파손된 불상대좌, 건물 주춧돌, 탑 지붕돌까지 다양한 유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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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선방곡 제1사지 석조여래입상.

입상인데 삼불사 120미터 떨어진 곳에서 넘어진 채 발견. 일제강점기에는 머리와 광배 일부가 남아 있었다는데 현재 머리 부위 없어지고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여 조각도 희미하다. 발 아래에는 12cm 촉이 있어서 불상을 대좌에 꽂았던 것으로 추측됨. 펜스가 쳐져있지만 쓸쓸하고 을씨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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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6대 지마왕 (112~134 재위)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파사왕의 맏아들. 지마왕의 재위 기간에 신라는 백제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가야와는 낙동강 하류를 둘러싸고 패권을 다투었다. 왜인들이 동쪽 변경을 침범하였으나 교섭하여 강화를 맺었고, 북쪽에서 말갈이 쳐들어오자 백제의 도움을 받아 물리쳤다. 무덤은 포석정에서 남쪽으로 200미터쯤 떨어진 남산 서쪽 자락에 있다. 발굴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외형과 입지로 보아 내부구조는 굴식돌방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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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있는, 통일 신라 때에 연회를 하던 정자. 왕과 신하들이 전복 모양으로 생긴 돌 홈의 굽이도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정자는 없고 물길만 남아 있는데, 물길은 22미터이고 높낮이의 차는 5.9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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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연대는 전하지 않으나, 주로 통일신라 시대의 기록에 등장한다. 관련 기록은 극히 부족하지만, 묘사에 따르면 대체로 국왕들이 유흥을 즐기던 놀이 공간이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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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회의 방법:  시회에 참석한 사람은 포석을 따라 빙 둘러 앉는다. 잔을 포석의 흐르는 물 위에 띄우고 물길을 따라 서서히 이동시킨다. 시를 짓는 사람은 굽어진 물길을 따라 움직이는 잔이 자신에게 도착하기 전에 시를 지어 잔을 들고 읇는다. 그 후 다음 사람에게 잔을 띄워 보낸다. 잔이 도착하기 전에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나 벌칙을 받는다. 포석은 시회의 놀이를 위한 장치이자 조경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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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포석정이라고 하면 포어(鮑魚: 소금에 절인 생선, 전복)의 형태를 모방하여 만든 석구(石溝)를 말하지만 사실 이 석구는 포석정의 한 가지 부속기물일 뿐이다. 일부 네티즌은 구덩이가 무슨 연회 장소냐며 말하지만, 본래 이 위에 포석정의 본 건물이 있었는데 뒤에 없어진 것이다.

포석정의 석구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기기 위한 용도이다. 유상곡수연은 4세기 위진남북조시대의 서예가 왕희지에서 비롯됐다. 물이 흐르는 수로의 첫 부분에 술이 담긴 술잔을 띄우면 술잔이 수로를 타고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는 구조인데, 수로를 기가 막히게 설계하여 술잔이 떠내려가는 중에도 기울어지거나 부딪히지 않았다 한다. 술잔이 떠내려가는 동안 시를 짓고 만약 못 지으면 벌주 3잔을 마시는 식으로 노는 것이 유상곡수연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수로를 물길을 꼬고 수로의 깊이까지 계산하여 설계하여 술잔이 오래 떠내려가게 하여 시를 지을 시간을 벌었다고 한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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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상곡수 유적인 포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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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의 용도에 대해서도 여러 견해가 있다. 암튼 정자가 있었고, 연회나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을 것이고.

우리에겐 특히, 신라 경애왕이 여기서 놀다가 견훤이 쳐들어 온지도 모르고 도망가다 잡혀 죽었다. 경애왕과 왕비나 귀족 등, 그 말로는 처참하다.

마치 포석정이 이후로 망국의 이미지, 흥청망청 이런 생각만 떠올리게 교육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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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수부쪽. 겹수로부쪽에 출수부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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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포석정에 혼이 빠져 혼자 떠나갈 줄을 모르는 남편님.

사방 각도에서 분석하고 사진찍고 동영상 찍고. 천년전으로 돌아가서 빙의된 듯 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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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우물탄생 설화가 있는 나정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삼릉숲에서 포석정까지만 탐방한 후,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점심때가 넘어가니 다들 배도 고프고. 주욱 앞길만 트레킹하는 것 보다 가다 서다 자세히 보고 이런 게 좀더 피로한 것 같다. 

새삼 경주의 지형이 멀리 사방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이 너른 들판에 고스란히 신라의 천년 역사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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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으로 길쭉한 형태의 불교미술관 경주 남산. 골짜기마다 많은 불상과 탑들이 있고, 탐방하려면 등산길보다 옆길로 새서 봐야 하고. 오래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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