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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유적지 Ankor Wat.  

12세기 초반 수리야바르만 2세는 비슈누를 숭배하는 힌두교 사상에 힘입어 수백년 이상의 크메르 건축의 경험을 토대로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앙코르 왓을 건축하는 영화를 이루었다.  영묘이자 왕궁, 사원 그리고 제신의 거처 역할 등을 했던 곳으로 한 때 사원 북쪽에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1차 목적은 왕궁, 그리고 왕이 죽은 후엔 왕릉의 역할을 했다.
'앙코르' 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도시를 뜻하는 '나가라 (Nagara)'에서 파생된 말로 Nokor - Ongkor - Ankor로 음운변화를 일으켜 크메르어화한 말이라고 한다.  '앙코르 왓'의 직역은 '도시의 사원' 쯤이 되겠다.  왓은 태국말로 절이란 뜻인데 16세기 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1113년 ~ 1150년까지 37년간 2만 5천명이 동원되어 지는 달과 떠오르는 달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지어졌으며 비슈누에게 헌정되었다.  
건축물의 장엄한 곡선은 푸른 하늘과 초록색 정글과 절묘하게 이루어져 요즘에는 사원의 탑신과 탑신 사이에 비스듬히 떠오르는 일출의 실루엣을 담고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해자까지 포함한 사원의 크기는 동서 1.5키로, 남북 1.3키로 총 200헥타아르로서 앙코르 지역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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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입구에는 다리 양편으로 나가가 조각된 난간이 있다.  많이 훼손되었다.
서쪽에 정문이 있고 해자를 가르는 250미터의 다리가 있는데 폭 12미터, 두께 5미터 사암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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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운데로 나누어 오른쪽은 복원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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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모습과 원래 모습을 비교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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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도 무너져 가고 있어서 복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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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가는 일종의 코브라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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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오른쪽 고푸라 근처의 비슈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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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문에서 들어 오면 양쪽으로 도서관이 있다.  일본 자본 등으로 복원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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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머리 모양과 멋스런 장신구를 하고 있는 압사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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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복원 중이라 정면에 정통으로 초록색 차양이 쳐져 있어서 사진이 좀 그렇다.
사원은 크게 피라미드의 탑과 회랑으로 나눌 수 있다.  히말라야의 메루산을 사원 산으로 표현하고 부속 건물들을 탑 주위에 첨가시켰으며 3개의 층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는 앙코르 왓은 각 층마다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각 층을 미물, 인간, 신의 세계로 표현하며 3층 중앙 성소를 오르는 작업은 의식적으로 진짜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과 같다.  사원 높이 65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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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상은 다섯 개의 탑이 왕관을 쓰고 있다.  멀리 정문에서 보면 3개의 탑만 보이지만 보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탑신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4백여 년 동안이나 방치되어 있던 이 불가사의한 사원을 19세기나 되어서 발견했으니..  밀림을 헤치고 찬란하게 드러난 이 사원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대단한 감동을 느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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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쪽 문에서 들어 가서 반대편 동쪽 문으로 나가게 된다.
(출처:  http://angkor.com.ne.kr)

http://blog.naver.com/ryu71158?Redirect=Log&logNo=10104134588
앙코르왓 지도 참조 블로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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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 앞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배경으로 사원의 실루엣을 찍는 사진 포인트 장소
멀리 야자수들이 둥실 떠 오른 뭉게구름처럼 앙코르 왓의 실루엣에 포인트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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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이런 무성하고 키 큰 나무들로 둘러 싸인 사원.  사원 주변으로 숲이 조성되어 있으니 공기도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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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중앙으로 들어 가기 전 휴식하면서 코코넛 안에 쥬스 맛 보기.  맛이 밍밍한 편인데다가 차갑지 않으니 그닥 맛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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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의 부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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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유적지를 다니면 몇 번 반복했던 것이, 역사는 사람들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했었다.  
중요한 점은 '역사는 강자의 편에서 기록된다'는 것이다.  즉, 전쟁이나 싸움 등에서 이긴 사람이 역사를 기록하게 되고 그들 관점에서 쓰게 되므로 사실 정작 진실은 언제나 저 건너편 어디에 묻혀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 이건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재현되고 반복된다.  나름대로 주관을 가지고 대등한 (혹은 오히려 월등해도) 힘을 가지고 있어도 억울하게 지고 당한 사람은 역사의 편에 설 수 없이 한쪽 구석으로 물러 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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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 회랑이 크게 3중으로 되어 있는데 내내 이런 부조이니 어마어마하다.  대체 어떻게 일일이 조각하고 그렸을지..  어느 정도 그리다가 화딱지 나고 지겨워서 때려치우지나 않았을런지..  얼마나 많은 크메르 장인들이 살았고 이 사원을 짓는데 동원되었을까.  나중에 생각하니 이러니 왕국이 망하지 않았겠나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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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슈누의 영광과 수리야바르만 2세의 신성한 권위 그리고 전쟁의 정당성을 상징적으로 부조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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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회랑 북쪽 방면 랑카의 전투 장면.  라마가 하누만을 어깨에 서서 화살을 세 개씩 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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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은 도무지 어느 방향으로, 어디로 도는지 모르겠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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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엔 군기가 바짝 든 크메르 군대들과 오른쪽 웃는 얼굴들은 중국 용병들이라고 차이점을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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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회랑 서쪽 방면, 수리야바르만 2세가 제후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고 행렬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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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기 이렇게 큰 나무들 투성이.  수령은 최소 수백년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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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의 경사가 급하고 폭이 지나치게 좁아서 나무 계단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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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경사가 이렇게 급한 이유는, 사람이 신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을 때 감히 허리를 뻣뻣이 세우고 들어 오지 말고 굽히고 기어서 오르도록 하는 이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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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계단이 더 위험한지 막아져 있다.  아예 폭 좁은 계단 한칸 한칸들이 마모되어 있슴.  계단이 아니라 완전 절벽..
암벽타기를 해야 할 거 같다.  더 예전 관광객들 사진을 보면 이 계단을 지지하는 철끈도 없이 기어 올라 가더라. ㅜㅜ  어느 계단인지 프랑스 여자 관광객이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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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쪽에 3층 '신의 영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사람들 줄 서서 올라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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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라이트인 3층 계단을 올라서 내려다 본 모습.  멀리 노란색 애드벌룬 같은 게 참 거시기하네..

여기 오를 때 나시 티 금지, 하의는 무릎 위로 올라 가면 안된다고 한다.  여행사 직원에게 분명 문의했을 땐 반팔 반바지도 된다고 하더만..  그러니, 진이가 인도네시아에서 샀던 싸롱을 가져와서 밑에 둘렀다.  형광색 폴로식 티셔츠에 싸롱 천... -_-  싸롱은 이쁘지만 키도 안 받쳐 주고 완전 가관~~  할 수 없지 머..  누가 신경쓰나 나만 신경쓰지..
어쨌건 좀 이상하다.  현재 기능을 수행하는 사원도 아니거늘 3층 오를 때만 검열을 하다니..  아무리 비슈누 상이 있고 불상이 있어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곳에 일부러 경의심을 표하라는 것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두른 것은 둘째치고 나무 계단 오르는데 급경사라 앞에서 뭔 일 나면 휭~ 날라가서 떨어질 거 같다. ㅠㅠ
내 가방은 가이드한테 맡기고 SLR만 안고 올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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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개가 넘는 여신과 압사라들이 벽감에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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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애들은 역시 얇은 동남아 몸빼 바지 참 잘 어울림.
위엔 나시티를 입고 신발은 조리를 신고 새카만 썬글라스를 껴도 동양인들보다 사진도 잘 나오고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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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전의 영화로운 왕국은 여기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봤을 것이다.  하지만 천년이란 시간도 영겁의 세월에 비하면 눈깜짝할 사이인 것을..  선 끝마다 느낄 수 있었던 섬세하고 놀라운 예술의 극치들은 이제 마르고 닳아서 모래 기둥 사이로 날아가 없어졌다.  천년이 흐르는 동안 무수한 영욕의 세월을 이 사원은 여전히 위엄을 갖추며 말 없이 바라만 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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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왔던 계단.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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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계단.  사진기를 위에서 슬금히 찍으니 경사는 그럭저럭 인 듯 보이지만 70도 경사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덴 옆에 철 끈 잡는 게 필수!!  진이는 주머니에 손 꽂고 척척 잘도 내려 가더만 ㅜㅜ  그 뒤로 나는 철끈 지지대 잡고 한 계단 한계단 옆으로 몸을 틀어서 내려 가니.. 쯧~  (완전 노인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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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쪽 문으로 나가게 되는데 유네스코 등에서 회랑의 부조등을 복원하는 계획을 설명해 주는 표지판.
그림 설명은 '우유의 바다 젓기' (The Churning of the Sea of Milk) -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우주에서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 6억명의 압사라가 태어나고 등등..   힌두교 신화 내용은 이야기도 쉽게 이해하긴 힘들고 이름도 사람 이름인지 동물 이름인지 @.@  책을 보더라도 내가 무슨 내용을 읽고 있던 중인지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가이드가 부조마다 사원마다 열심히 열심히 설명을 해 주지만 이야기의 개연성을 파헤치자면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론은, 3신을 일단 기억해야 함 -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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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회랑 중간 벽에는 1702년 2월 23일의 기록이 있는데 마을 촌장이 아내와 자식의 뼈를 묻어 무덤을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무덤은 아직도 회랑 가까이 첨탑모양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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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걷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많이 아쉽다.
12세기에 인구 백만이 거주했다는 앙코르 와트.  한 때 세계 7대 (혹은 8대) 불가사의로 지정되었던 앙코르 왓트는 이 사원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따 프롬, 앙코르 톰 유적지 외에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유적들까지 천 여기가 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유적군들이 이 근처 밀림 숲 속에 들어 있을지..  굴러가는 돌 하나도 범상치 않게 동남아 제 1 제국의 영욕을 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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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런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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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 [Angkor Wat]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문화의 대표적 유적.

앙코르톰의 남쪽 약 1.5km에 있으며, 12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한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婆羅門敎) 주신(主神)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부조(浮彫)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바깥벽은 동서 1,500m 남북 1,300m의 직사각형으로 웅장한 규모이며 정면은 서쪽을 향한다. 바깥벽 안쪽에서 육교로 너비 190m의 해자(垓字)를 건너면 3기(基)의 탑(塔)과 함께 길다란 익랑(翼廊)이 있고 여기서 돌을 깔아놓은 참배로(參拜路)를 따라 475 m쯤 가면 중앙사원에 다다른다.

사원의 주요 건축물은 웅대한 방추형 중앙사당탑(中央祠堂塔)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자형으로 뻗은 익랑, 그것을 둘러싼 3중의 회랑과 회랑의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으로 이루어졌는데, 구성은 입체적이고 중앙은 약간 높다. 회랑의 높이는 제1회랑(215×187m)이 4m, 제2회랑(115×100m)이 12m, 제3회랑(60×60m)이 25m이다. 세계의 중심이며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須彌山)은 돌을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쌓아놓았으며, 높이 59m의 중앙사당탑의 탑 끝에서 3중으로 둘러싼 회랑의 사각탑 끝은 선으로 연결해보면 사각추(四角錐)의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이 사원의 뛰어난 미술적 건축양식은 인도의 영향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건물의 형태나 석조장식(石彫裝飾) 등 모든 면에서 앙코르왕조의 독자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전장(全長) 760m에 이르는 제1회랑벽(回廊壁)의 부조, 제2회랑 안의 돌로 조형한 샘물[泉水], 제3회랑 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주랑(柱廊)과 탑 등은 뛰어난 구조물이다. 조형에서는 하늘의 무희(舞姬) 아프사라스, 여러 개의 머리를 마치 부채처럼 치켜든 커다란 뱀, 창문·기둥의 장식조각 등이 돋보인다. 앙코르왕조는 13세기 말부터 쇠망하기 시작하여 15세기경에는 완전히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와트도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가 이곳을 발견, 그때부터 다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지역은 1972년부터 외부인에게 폐쇄된 이후 낮이면 베트남군이, 밤에는 크메르루지의 게릴라가 번갈아 장악하면서 전화(戰禍)와 약탈로 훼손되어 수많은 불상이 조각난 채 나뒹굴고 대부분이 외국으로 유출되어, 완전한 복구는 어려운 상태이다. 1982년 집계를 보면 앙코르와트의 중요 유물 30점 이상이 없어졌고,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불능의 상태로 파괴되었으며, 사원 근처 왕궁의 유물 약 1,000점이 도난·파괴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1983년 이 유적지의 복원을 위해 조사단의 파견을 캄보디아 당국에 통보한 바 있다.

[출처] 앙코르와트 [Angkor Wat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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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앙코르 왓 (지도 아래 부분) --> 따 프롬 (지도 오른쪽) --> 앙코르 톰 (지도 윗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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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버스 맨 앞, 안쪽 차창 위에 붙어 있던 캄보디아 지도.  톤레삽 호수 윗쪽, 캄보디아 영토 내에선 비교적 윗쪽에 씨엠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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