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31 21:44

덕수궁 정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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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중심지 정동:

정동은 조선 후기인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해 있던 곳으로, 그들이 서로 조선에 더 큰 영향권을 행사하기 위해 역사의 큰 파장을 일으켰던 곳이다. 한국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회인 정동교회와 미국공사관, 이화여고, 배재학당이 이 부근에 있어 미국문화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중심지였다. 이처럼 정동은 기독교 전파와 교육사업을 목표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그밖에 명동성당과 약현성당, 한국은행 본관, 서울역, 천도교중앙대교당 등의 근대문화유산이 중구와 종로구 일대에 자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특별시 의회> (태평로 구국회의사당, 부민관 의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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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히비야[日比谷]에 있는 공회당을 본떠 세운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서, 1935년 12월 10일 국민들을 위한 공연장인 '부민관(府民館)' 건물로 건립하였다. 연면적 7,097.3㎡, 대지 5,874㎡, 건축면적 1,927.2㎡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이며 지붕 모양이 탑식이다. 
 
8·15광복 뒤 제헌국회를 개최하여 초대 대통령을 선출하였으며, 1954년 6월 제3대 국회부터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어 한국 정치사의 중앙무대로 역할하였다. 1980년 정문과 현관을 헐고 내부벽체 등을 개조하는 등 리모델링 공사를 하였으나 건물의 전체 외관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1991년부터 서울시의회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평로 구 국회의사당 [太平路舊國會議事堂]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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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

http://www.cathedra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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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 대지 면적 1,346평에 건평 300평으로 지은 3층건물로, 화강석과 붉은 벽돌을 아울러 쌓은 조적조(組績造 : 돌, 벽돌 등의 조각을 쌓아올려 벽을 만드는 건축구조) 구조의 로마네스크(Romanesque)양식 건물이다.  평면은 +자형이며 장축(長軸)의 가운데에 신랑(身廊, nave)을 2층으로 두어 목조 트러스로 지지한 맞배지붕을 씌웠고, 반면에 측랑(側廊, aisle)은 1층 높이에 경사지붕을 씌워 내부공간의 위계를 외부의 형태에 드러나게 구성하였다.  4모지붕을 덮은 중앙 종탑은 신랑과 수랑(袖廊)이 만나는 부분의 위쪽에 3층 높이로 세워졌는데, 이 뒤로 작은 종탑과 후진(後陣, apse : 건물 동쪽 끝에 내민 반원형의 부분)이 생동감있게 연결되어 있다.  수랑을 기준으로 그 앞부분은 전체를 붉은 벽돌로 마감하였고, 정면에 아치(arch) 문과 장미창(薔薇窓)을 내고 측면에는 반원형 아치 모양을 장식적으로 되풀이하면서 3개씩의 창문을 내었다.  수랑의 후반부는 화강석으로 아치구조를 만들고 벽을 쌓거나 기둥을 세우고 개방하는 등 다양한 조형을 보여주고 있다.  벽체와 지붕의 경계에는 코니스(cornice : 처마 복공)를 두르고 모딜리온(modillion)을 촘촘하게 배열하여 건물 전체에 율동감을 주고 있다.  한편, 이 건물은 1890년 우리나라에 온 초대주교 코프(Corfe,C.G.)가 1922년에 착공하여 1926년 5월 2일에 완공하고 헌당식(獻堂式)을 가짐으로써 세워졌다. 일제침략기에 서양인에 의하여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설계된 본격적인 건축양식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큰 건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성공회성당 [─聖公會聖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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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 양이재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실 공사인 경운궁(慶運宮:덕수궁의 옛 이름)을 중건(1904~1906)할 때 궁 안에 건립한 건물이다. 1927년경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으면서 어느 정도 변형되었으나 기본 골격은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1906년에 개설되어 1910년까지 존속하였던, 궁 안의 황족과 귀족의 자재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치한 근대식 교육기관인 수학원(修學院)으로 사용되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운궁 양이재 [慶運宮 養怡齋]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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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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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http://www.deoksugung.go.kr/

http://www.deoksugung.go.kr/cms/contents/about/about02.asp#

덕수궁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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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德壽宮)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덕수궁은 조선 태조의 계비 강씨의 무덤인 정릉(貞陵)이 있던 곳으로, 능은 태종 때 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겨졌고, 그 자리에 성종의 형 월산대군(1454∼1488)의 저택이 들어섰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피난 갔다가 1593년 10월 왕과 조정이 서울로 돌아와서 거처할 왕궁이 없자 왕실의 개인 저택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이곳을 임시 궁궐로 삼아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규모가 좁아서 인근에 있던 계림군(桂林君, ?∼1545)과 심의겸(沈義謙, 1535∼1587)의 저택을 합하여 궁내로 편입시키고,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이라 부른 것이 후일 덕수궁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덕수궁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 · 유교건축, 2004. 11. 30., 솔출판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82062&cid=40942&categoryId=33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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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전

고종께서 1897년에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하면서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협소하였으므로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었다. 본래는 2층으로 된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 4월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으며, 중화전의 정문으로 중화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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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전, 미술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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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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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준명당: 서재. 덕혜옹주 유치원) 오른쪽 즉조당

준명당(俊明堂)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이 건물은 15대 광해군(光海君)과 16대 인조가 즉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897년 고종의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직후 정전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이때 즉조전의 이름을 태극전, 중화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2년 새로운 정전이 세워지자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1904년 화재로 손실되었는데 그해에 다시 석어당, 함녕전과 같이 중건하였다. 고종의 후비인 순헌황귀비 엄씨가 1907년부터 1911년 7월 승하할 때까지 이곳에서 거처하셨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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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어당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고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같은 해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유일한 중층의 목조 건물로 선조(宣祖)께서 임진왜란 중 의주로 가셨다가 환도한 후 이곳에서 거처하셨고 1608년 2월 선조가 승하한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또한 인목왕후가 광해군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며,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光海君)을 석어당 뜰 아래 꿇어 앉히고 광해군의 죄를 문책한 곳 이기도하다.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아래층은 정면 8칸, 측면 4칸이며 위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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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녕전

1897년 건립되었으며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1904년 4월 함녕전 온돌 수리 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주요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고 함녕전은 같은 해 12월에 중건되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께서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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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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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가 차와 음악을 즐기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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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전 (--> 대한제국역사관)

조선시대 궁중건물 중 대표적인 유럽풍의 석조 건축물로 영국인 "하딩"이 설계하였고, 1900년 기공되어 1910년에 준공되었다. 고종(高宗)께서는 석조전에서 고관대신과 외국 사절들을 만나는 용도로 석조전을 사용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기 이전까지는 현대미술품을 진열하였으며 1946년~1947년까지 미·소 공동위원회가 사용하였고, 1948년~1950년에는 유엔 한국위원단이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건물 일부가 파괴되어 1955년 육군 공병단에 의해 수리되었으며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하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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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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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문

1897년에 건립하였으나 1904년에 소실되었다가 중건된 목조 건물로 당초 함녕전의 정문이었으나 1938년 미술관 개관 시 흥천 사종과 창경궁 자격루를 진열하기 위하여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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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전망대 - 13층 에서 내려다 본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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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서울을 제국의 황도에 걸맞게 개조하려 하였다.  경운궁과 정동은 전통과 근대의 공존을 추구한 대한제국의 개혁 이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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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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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가 세운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이다. 초기부터 영어수업을 비롯한 전인교육을 실천하였고, 초대대통령 이승만과 김소월, 주시경, 나도향 등 수많은 근대지식인을 배출한 신교육의 발상지이자 신문화의 요람이다. 현재는 배재대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중학교가 배재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받아 인재양성과 사회봉사에 힘쓰고 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1916년에 세워져 교실로 사용된 배재학당 동관 건물을 그대로 살려 2008년 개관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은 서울시 기념물 16호로 지정된 건축문화재다. 역동적인 공간구성과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상설전시장과 매년 새로이 마련되는 기획전시 및 특강 프로그램들로 일반관람객들과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새로운 시각의 체험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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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당시 교실모습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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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을 얹기 전 배재학당. 그 때 당시 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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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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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1895년 9월에 착공, 이듬해 헌당식(獻堂式)을 거행하고 1897년 10월 무렵에 준공된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축물이다. 교회 내부는 평천장(平天障)에 별다른 장식 없이 간결하고 소박하며 기단(基壇)은 석조(石造)이고 남쪽 모퉁이에 종탑을 세웠다. 건물은 벽돌쌓기로 큰 벽체를 구성하고 아치 모양의 창문을 낸 고딕 양식의 교회당이다. 1926년 양쪽 모퉁이를 넓혀 삼랑식(三廊式) 평면형으로 교회 건물을 증축하였으며 1953년에는 6·25전쟁으로 반파(半破)된 교회를 수리하여 복원하였다.

정동교회의 역사는 1885년 10월 11일, 미국 북감리교 선교부 목사 아펜젤러가 정동에 마련한 한옥집에 예배실을 설치하고 감리교회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인을 위한 성례식을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는데, 이 날 여자 한 사람을 포함한 4명의 신자가 예배를 드리고 세례를 받았다. 아펜젤러는 이보다 앞서 1885년 6월에 입국하였으나, 당시 조선 정부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전도사업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아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세워 신학문 교육부터 시작하였다. 1887년에는 정동에 준공된 건물을 '벧엘예배당'이라 칭하고 첫 공개예배를 가졌으며, 같은해 한국 최초 여성과 어린이 전용병원인 정동부인병원을 개원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 정동교회 [貞洞第一敎會禮拜堂]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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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정동 일대의 건축물과 시설

 

1883  미국공사관 설치

1884  영국총영사관 개설

1885  배재학당 설립,  러시아공사관 개설

1886 이화학당 설립

1890  러시아공사관 준공

1891  영국공사관 건립

1896  경운궁 공사,  프랑스공사관 준공

1897  환구단 건설,  정동제일교회 준공

1898  한성전기회사 건립

1900  서대문정거장 건설

1901  이탈리아공사관 준공

1902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 건립, 손탁호텔 건립

1903  서소문으로 이탈리아공사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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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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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서울 梨花女子高等學敎 Simpson紀念館)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1915년에 준공된 옛 이화학당의 교사(校舍)로 현재 이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02년 2월 28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3호 정동 이화여고심슨기념관로 지정[1] 되었으나, 2013년 10월 30일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으로 등록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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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학당한옥 교사를 사용하다가 1899년에 양옥 교사인 메인 홀(Main Hall), 프라이 홀(Frey Hall) 등을 신축하였다. 하지만 교실난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여 새 건물을 신축할 부지로 정동 30번지 땅을 구입하였다. 미국 컬럼비아 리버 지회의 홀부룩이 희사한 기금으로 1914년에 기공하여 1915년 3월에 건물을 준공하였다. 홀부룩의 기부금은 그의 동생 사라 심슨(Sarah J. Simpson)이 세상을 떠날 때 위탁한 것이어서 심슨기념관으로 명명하였다.[3] 1922년 건물 서편에 280평의 교사를 증축하였고, 이후 주로 고등보통학교에서 사용하였다. 해방 이후 이화여자중학교의 교사로 사용되었으며 한국 전쟁 때 건물 동편이 일부 불에 탔다. 현재 건물은 1961년에 증축한 것이다.[4] 한편, 메인 홀은 한국 전쟁 때 파괴되고 프라이 홀은 1975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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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턴이 1885년 10월 1천여 평의 대지에 세운 학교.

1887년 정부에서 이화학당이란 이름을 내렸다.  초기 건물 중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심슨홀은 붉은색 벽돌로 3층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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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5월 영어를 배워 명성황후의 영어 통역관이 되고자 찾아 온 김부인을 교육시키면서 시작됐다.

'한국인을 보다 나은 한국인이 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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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이화학당 학생들

가난한 어머니가 딸을 부양할 수 없어 맡겼던 별단이라는 소녀.  1886년 콜레라가 만연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 스크랜튼 학장 아들이 서대문 근처에서 버려진 아이를 데리고 왔고 (꽃님이).  네번째 학생은 김점동, 최초의 여의사가 된 박에스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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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 사진, 맨 오른쪽 유관순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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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러시아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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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본래 러시아 공사관의 전망탑으로 현재 22㎡ 집터 위에 남아 있는데, 몸채는 러시아 사람 사바틴(Sabatine)의 설계로, 1890년에 지은 르네상스식 건물이었다. 특히 정문은 개선문 양식이었다. 이 공사관의 첫 입주자는 초대 공사 웨베르(Carl Waeber)였는데 1904년 러일전쟁으로 폐쇄되었다가 일본과 러시아가 국교를 열면서 다시 쓰였다. 이 공사관은 특히 아관이라 일컫는데 고종 황제의 아관파천은 이 집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다. 즉 고종 황제는 1895년 10월 8일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웨베르가 친러하였던 이범진, 이완용 등과 더불어 고종 황제의 안전을 빙자하여 러시아 수병 100명을 인천으로부터 서울로 끌어들이고 드디어는 1896년(건양 원년) 2월 11일 황태자와 함께 경운궁(후일 덕수궁)으로부터 아관에 이어하시었던 것이다.

그후 국민운동에 힘입어 1897년 2월 20일 1년 10일 만에 다시 경운궁으로 환어하시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탑은 당시의 서울 시내를 감시하던 망루라 하는데 정방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1층에 탑에 출입하는 반원아치의 출입구가 있고, 속에는 망루에 오르는 철제 사닥다리가 설치되었다. 망루는 사방에 반원아치의 창문을 쌍으로 설치하고, 상부에는 삼각형 페디먼트를 두고 그 속에 원형의 메달을 두어 장식하였다. 현재 탑의 동북쪽으로 지표면 아래 지하 시설이 노출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 러시아 공사관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초판 2004., 5쇄 2009.,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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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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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useum.seoul.kr/www/NR_index.do?s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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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거리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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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운종가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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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러시아 공사관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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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정동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1883년 미국공사관을 시작으로 각국 공사관이 들어섰던 정동은 외교, 교육의 중심지로, 서양 문물이 들어오는 전진기지가 되었다.  대한제국 선포 후, 경운궁 내부에 대한제국 주요정부기관들이 들어섰고 주변도로가 신축 확장되고 전차, 전기 등 근대시설이 도입되면서 정동은 명실상부한 대한제국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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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미국공사관을 시작으로 각국 공사관이 들어섰던 정동은 외교, 교육의 중심지로, 서양 문물이 들어오는 전진기지가 되었다.  대한제국 선포 후, 경운궁 내부에 대한제국 주요정부기관들이 들어서고, 주변 도로가 신축 확장되고, 전차, 전기 등 근대시설이 도입되면서 정동은 명실상부한 대한제국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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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박물관 앞마당 수선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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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  고종즉위.  흥선대원군 집권

1865  경복궁 중건 (~1872)

1876  강화도조약 체결

1882  임오군란

1883  보병사 파견, 전환국 설치, 한성순보 발간

1884  갑신정변

1894  갑오개혁, 동학농민운동

1895  을미사변

1896  아관파천으로 친일 개화파 정권 붕괴, 독립협회 결성

1897  환구단 건설, 대한제국 선포

1898  서대문에서 홍릉간 전차궤도 부설

1899  경인철도 개통

1900  서울 인천간 시외전화 개통

1901  한성전기회사에서 시내 전등 시점식 거행

1904  러일전쟁 발발

1905  경부선 철도 개통, 을사늑약, 한국통감부 설치

1907  헤이그특사, 고종 강제 퇴위, 성벽처리위원회에서 남대문 등의 성벽 철거 시작

1910  일제 대한 제국을 강제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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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인 느낌의 정동 동네는 구한말, 대한제국 시기에서 신문물과 문화, 세계 열강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격변하는 세련된 황국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일제에게 결국 나라를 빼앗기기 까지 그들은 우리를 도와 주지 않았다는 사실.  덕수궁 화재, 고종 황제 승하 등 일제의 만행이 명백하지만 밝혀 내지 못하고 모든 것이 슬프게도 그대로 땅에 묻혀 버렸다.  낭만적인 느낌의 덕수궁 돌담길은 일제가 덕수궁 규모를 축소 해체하고 억지로 길을 뚫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이제는 아름다운 늦가을 정취를 느끼는 것으로만 정동길을 만끽하고 있지만, 발 아래에 가슴아픈 대한민국의 역사를 밟고 서 있다.

http://h2.khan.co.kr/201602041009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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