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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이른 점심 -- 북경 오리구이 --을 하고 천안문광장, 자금성, 경산공원을 향하여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리다..
길게 잡으면 북경의 역사는 2천년이다.  동토의 왕국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베이징 중심, 천안문 광장과 천자가 누렸던 권력의 상징 자금성에 수많은 인파와 함께 서 있다는 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베이징은 시대와 사상, 정치의 양면성 등이 녹아 있는 다양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먼저, 천안문광장을 가기 위해서는 광장의 중심부까지 약간 걸었다.  멀지는 않았는데 버스를 근처에 대는 것이 불가능했나 보다.  광장을 중심으로 둘러서 있는 모택동 기념관, 의회당, 그리고 자금성으로 향하는 관문까지 지하도를 건너서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에 이르렀다.
무려 100만명이 운집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에겐 1989년 천안문 민주화요구시위의 무대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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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광장에서 보았을 때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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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영웅 기념비.  모택동 주석 기념당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높이 37.94미터의 기념비.  
중국에서는 아편전쟁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까지 약 110년을 인민혁명을 위한 준비기로 보고 있는데 이 기념비는 이 기간 동안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일종의 Obelisk 역할을 한다고 한다.
1958년의 노동절 기간에 세워진 것으로서 정면에는 모택동이 쓴 '인민영웅은 길이 빛나라'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망자들을 기리기 위한 주은래 수상의 글자가 쓰여진 비문이 있다고 한다.
천안문 사건 당시 학생들이 이 기념비에 올라 꽃을 바치며 항의 시위를 한 것이 유명한데 유혈 진합 이후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성역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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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주석 기념당.  사진에서 자세히 보면 들어가려고 일찍 부터 줄을 선게 보인다.  인상적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창립자인 마오쩌둥을 기리기 위한 기념당으로 광장 남쪽에 있다.  사후 1년 뒤인 1977년에 건립됨.
마오쩌둥의 시신을 안치한 배례실로 가면 방부처리된 모주석의 시신이 수정관에 안치되어 있어 인파로 인해 시신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 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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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대회당.  우리나라로 보면 국회의사당 같은 곳.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에 벌어진 최대 건축 프로젝트로서
전국의 건축가들이 제출한 설계안을 바탕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민족적 품격을 느낄 수 있는 건물' 개념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만 명 수용 가능한 '만인예당'이 특히 유명하고 바로 여기서 전국 인민 대표자 회의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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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광장은 명, 청 시대에 황제의 조서를 발표하던 궁정 광장이었으나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일반인들의 출입이 가능해졌고, 1919년 5.4운동이 천안문 광장에서 시작된 이후 중국 현대사 주요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중국을 상징하는 문화의 광장으로 육성하려는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최근 억울함을 호소하는 서민들의 경연장이나 시위사건 등으로 인해 경비는 점점 더 삼엄해지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는 이러한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다양한 인파로 넘쳐나는 곳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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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대 이전만 해도 서방에서는 중국 내부 소식을 알 수가 없었고, 그나마 상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경절에 천안문 광장에 모인 고위 지도부의 얼굴을 보는 것 정도였다고 한다.  만약 작년에 있던 얼굴이 사라졌다면
다음 날 '아무개가 숙청된 듯'이라는 기사가 송고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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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는 거 같다.  한가로운 풍경.  인파들..  따뜻한 날씨..  외국인 관광객들..
모든 관광객은 중국 혹은 베이징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의 천안문 앞에서 베이징에 입성했음을 알리는 '증명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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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중간에 당당히 걸려 있는 마오쩌둥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그 옆에는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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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문 앞에서 광장쪽을 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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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년 명의 영락제에 의해 황성의 정문으로 지어진 천안문의 원래 이름은 승천문이었다.
명나라 개국과 베이징 천도는 다 하늘의 뜻을 받든 일이라는 의미.
오늘날 천안문은 1651년 전란으로 전소된 것을 청나라 때 재건한 것이다.  '천안' ...  천하를 편안케 한다는 의미.
1949년 마오쩌둥은 천안문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만방에 선포하였다.
황제만 드나들 수 있었던 천안문에는 현재 중국의 태상황이 된 마오쩌뚱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마오쩌둥 사후 제작된 이 그림은 사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사실주의적인 작품인데 1년에 걸쳐 그린 것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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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지금은 '고궁'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오문'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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