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 11월 모임. 경주까지 장거리를 고려하여 2박 3일로 계획하였었고 소노벨 경주 숙소가 잘 예약되어 유독 기대되었던 일정이다.

경주는 그 자체가 찬란한 문화유산의 보고이므로, 여기 저기 답사 다니려면 한달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천년고도 경주로의 여행은 2012년 7월 이후 10년 만이다.  유명 유적지도 다시 보고 싶고, 황리단길도 보고 싶고. 많이 보고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그래서 더욱 첫 기착지를 어디로 시작할까 고민하는 문제는 언제나 설레임과 신중함이 필요한 것 같다. 동반가족이 있을 경우에는 무의식적인 책임감도 느껴진다. 6시 출발해서 충주휴게소 들렀고, 11시 황룡사지 도착했다.

 

10년 전에는 여름에 방문했는데, 뜨거운 벌판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그쳤는데 그 이후에 역사문화관이 생겨서 관람하고 공부하기 좋다. 황룡사지의 발굴이 1976년 부터라니 현재까지도 진행은 더디어 보이지만 앞으로 더욱 발굴에 속도가 붙었으면 좋겠다. 

 

황룡사지> 경북 경주시 구황동 772

 

신라 진흥왕 14년 (553년)에 월성의 동북쪽에 새로운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사찰로 고쳐 짓게 하여 17년만에 완성하고, 절 이름을 황룡사라 하였다. 진흥왕 35년 (574년)에 5m가 넘는 주존불인 금동삼존불을 만들고, 선덕여왕 14년 (545년)에는 자장의 권유로 백제의 아비지를 초청하여 9층 목탑을 완성시켰다. (4대 93년간에 걸친 국가사업). 고려 고종 25년 (1238년)에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으며, 지금은 옛터만 남아 있다. 1976년부터 8년간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4만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당초 늪지를 매립하여 대지를 마련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사찰은 중문과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일담식 배치를 하였다가, 이후 금당 좌우에 작은 금당이 배치되는 1탑 3금당식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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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관 (입장료 3천원) 1층에 있는 10분의 1 크기 모형. 황룡사 구층목탑은 신라 선덕여왕 (645)에 건립되어 장육존상, 진평왕 천사옥대와 함께 신라삼보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탑의 높이는 상륜부 42척을 포함하여 225척으로 기록되어 있어 고려척으로 환산하면 약 80미터에 달하는 거탑이다. 9층탑을 지으면 아홉 오랑캐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고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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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 주변에 펼쳐져 있는 유적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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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들이 구획별로 나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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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1층 3D 영상관) 등을 보니, 결국 황룡은 용오름 현상 등을 보고 착각한 것이 아닌지... 9층 목탑은 한국고건축사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7세기 조성 당시에는 전 세계에서 나무로 지어진 가장 높은 목조건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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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초기 역사. BCE 57년 박혁거세를 첫번째 왕으로 추대함. 국호는 서라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8414&cid=59015&categoryId=59015

박혁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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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실에 있는 장육존상 모형 머리 뒷쪽에 청동나발 (1982년에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장육존상 불두의 부처님 머리카락 장식) 이 붙어 있다. 이로인해 장육존상의 크기를 모형으로 가늠할 수 있다.

장육존상은 황룡사에 조성되었던 불상으로 9층 목탑, 진평왕 천사옥대*와 함께 신라 3보 중의 하나로 전해진다. 삼국유사에, 인도의 아육왕이 불상을 조성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인연이 있는 땅에 가서 이루어질 것을 기원하며 금, 구리, 모형 석가삼존상을 배에 띄워 보냈는데, 진흥왕 35년 (574)에 장육상이 신라 땅에서 조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게는 35,007근으로 황금이 10,198분이 들었고 두 보살상은 구리 12,000근과 황금 10,136분이 들었다고 할만큼 거구의 금동삼존불상으로 추측되며 높이는 1장 6척으로 5미터 이상의 신라 최대 금동불상으로 추측된다. 

 

* 천사옥대설화(天賜玉帶說話)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천사옥대설화(天賜玉帶說話))]

진평왕이 왕위에 오르던 해에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옥대(玉帶)를 가지고 내려와 상제의 명을 받들어 이를 왕에게 바쳤다. 왕이 친히 두 무릎을 꿇고 공손히 받자, 천사는 곧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뒤 천지에 제사하거나 종묘에 제사할 때는 으레 왕이 이 옥대를 띠었다.

그 뒤 고려 태조 20년(937) 경순왕이 이 띠를 태조에게 바쳤다. 길이가 10위(圍)이며, 띠쇠[銙]가 62개였다. 태조는 이를 받아 내고(內庫)에 간직하여 보물로 삼았다. 고려왕이 신라를 침범하려 할 때 신라에는 천사옥대를 비롯한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할 수 없다고 하였다. -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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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는 엄청난 규모와 9층목탑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방문에 장육존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기록에만 남아 있으니 아쉽다. 청동나발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에는 박물관은 패스했었다.  다음에 다시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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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 방향으로 멀리 금당지와 목탑이 세워졌던 부분이 보인다. 사찰 경내만 약 3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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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으로 당겨서 본 금당지와 목탑있던 기단석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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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기념품점에서 바라본 황룡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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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먹었던 교리김밥 본점. 김밥과 잔치국수 먹었다.

특색으로는 담백한 계란 지단이 많이 들었는데 오래된 맛집으로 방송 등에서 유명세를 탔고, 한번도 안 먹어 봤으니 워낙 유명세 덕분에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다. 바쁠때 줄까지 서서 오래 기다려 먹는 기대와는 평범했다. 우리 입맛엔 김밥도 음식도 단짠단짠이 더 맛나게 느껴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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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본점에서는 김밥만 살 경우는 테이크아웃만 된다. 매장에서 식사할 경우는 잔치국수도 주문해야 함.

먹어 본 결과, 가격 대비 양은 넉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1줄에 5천원. 국수는 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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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탑리3길 2 (탑동 본점). 지점이 여러 곳 있는데 휴무일이 겹치지 않게 운영한다. 보문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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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감은사(感恩寺)는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후,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좇아 즉위한 지 2년 되던 해인 682년에 완성한 신라시대의 사찰이었다. 문무대왕은 죽기 전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바로 대왕암이며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여 사찰을 완성하고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얻어진 자료를 통해 창건 당시의 건물 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며, 아울러 금당의 지하에는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의 휴식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한 특수 구조와 동쪽으로 통로를 만들었다고 하는 흔적도 밝혀 놓은 것이다. 우뚝 솟은 두 삼층석탑은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으로서 수십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 조립식으로 세운 것으로 전체 높이 13.4m에 이르는 신라 삼층석탑 중 최대의 것이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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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 봉길해변 문무대왕릉 가기 전,  경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감은사지.

10년 전 방문 이후에 데크와 계단이 설치되어 있더라. 없을 때가 더 멋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종종종. 멀리서 봐도 3층 석탑이 꽤 큰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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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3층 석탑 (국보 112호),  동쪽 탑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표지 그림이 감은사지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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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탑. 금이 가서 허물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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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보기 좋게 단정되어 있었지만, 펜스 설치를 한 느낌이 왠지 마당 정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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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문무대왕이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킬 것이라는 유언을 받들어 용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금당지 초석 아래 통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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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31호 감은사지(感恩寺址)는 경주 시내에서 감포 쪽으로 약 36km 거리의 동해변에 위치한 절터이다. 감은사는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이 아버지인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을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현재 감은사의 가람을 구성하였던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국보 제112호 삼층석탑 2기는 지금까지 옛 금당(金堂) 자리 남쪽에 남아있다. 감은사는 호국사찰(護國寺刹)로서 동해의 문무왕릉과 함께 문무왕의 호국사상을 엿볼 수 있는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식(雙塔式) 가람이 확인되었고 석탑에서 여러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불교건축과 공예품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우리역사넷 인용)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10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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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유독 감은사지를 감명깊게 느끼는 걸까...  죽어서 용이되어 나라를 지킨다니, 과학적으로는 허구일 듯한 문무대왕의 신화같은 이야기를 꼭 역사처럼 받아 들이고 싶다. 다음에도 꼭 감은사지에 들러야지.  석탑 오르는 언덕에 앉아, 혹은 이 각도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 보는 게 희망사항. 절보다 절터 (사지)를 느끼고 있으면 너무나 황량하고 쓸쓸한 그 느낌이 좋다. 한때 찬란했던 영욕의 역사는 돌 덩어리만 덩그러니 흔적만 남겨 놓고 있으니 허무함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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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

 

1967년 7월 24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은 통일 후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그리하여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護國大龍)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대석(大石)에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대왕암은 육지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바다에 있다. 큰 바위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 약간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대석을 이동하여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대왕암 주변을 큰 바위(화강암)가 둘러 싸고 있는데, 네 방향으로 물길이 나 있어 주변 바위는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연적으로 물길이 나 있는 상태이나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내어 물길이난 가운데 공간을 약간 가다듬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주 문무대왕릉 [Tomb of King Munmu, Gyeongju, 慶州 文武大王陵]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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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에 올라보면 마치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로(水路)를 마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특히, 동쪽으로 나 있는 수로는 파도를 따라 들어오는 바닷물이 외부에 부딪쳐 수로를 따라 들어오고 나감으로써 큰 파도가 쳐도 안쪽의 공간에는 바다 수면이 항상 잔잔하게 유지되게 되어 있다.

이 안쪽의 공간은 비교적 넓은 수면이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하고도 큰 돌이 놓여 있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문무왕의 유골을 이 돌 밑에 어떤 장치를 해서 보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중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이 판석(板石)처럼 생긴 돌 밑에 어떠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사방으로 마련된 수로와 아울러 안쪽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바위를 인위적으로 파낸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문무왕의 수중릉일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더구나 바위의 안쪽에 마련된 공간에 사방으로 수로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부처의 사리(舍利)를 보관한 탑의 형식에 비유되고 있다.

즉,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사방에 문이 마련되어 있는 인도의 산치탑의 경우나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 석탑 하부의 사방에 통로를 마련한 것과 같은 불탑의 형식이 적용되어 사방에 수로를 마련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지금까지 그러한 예가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무덤이라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경주 문무대왕릉(慶州 文武大王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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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기상을 한껏 받기~

문무대왕과 관련된 만파식적 이야기가 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찬양하기 위하여 문무대왕에 얽힌 설화와 역사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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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 萬波息笛 ] 

 고전(古典)에 전하는 신라의 신적(神笛)으로 왕이 이 피리를 부니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 해결되었다고 전해진다.

만파식적설화에 전하는 일종의 가로피리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하여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하였는데,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합심하여 용을 시켜 동해(東海) 중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가 되는지라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현장에 거동(擧動)하였다.

이 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사라졌다. 왕이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이 피리를 국보로 삼았는데, 효소왕(孝昭王) 때 분실하였다가 우연한 기적으로 다시 찾게 된 후 이름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고쳤다고 한다. 대금(大笒)의 기원을 이 만파식적에 두는 사람도 있으나, 이미 이전에 삼죽(三竹)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 설화에는 신라가 삼국통일 이후, 흩어져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했던 호국사상이 담겨져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파식적 [萬波息笛]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45153&cid=62033&categoryId=62033

신라 왕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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