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사, 히로쓰 가옥 구경 후 군산세관을 보려다가 맞은 편에 새로 생긴 근대역사박물관이 있어서 잠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깨끗하게 지어진 박물관은 군산이 근대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체험 코스였다.  서해안의 관문이며 개항 역사를 바탕으로 해양역사 주제의 전시 공간도 있었고, 서울이나 근거리에 이런 박물관이 있다면 박물관 견학 코스로 좋을 것 같다.

hall 왼쪽으로는 어청도 등대 모형이 있다.  청일전쟁 이후 중국 항로의 중요성으로 1912년에 축조되었다.


http://museum.gunsan.go.kr/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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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는 '해양물류역사관' 전시실이 있다.  국제무역항으로서의 군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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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기획전시로, 동국사 소조여래삼존불상의 복장유물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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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혁명으로 희생된 분들.  나라 빼앗긴 백성들은 핍박에 못 이겨 봉기를 하지만 공정한 재판도 없이 전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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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망 어선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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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구군 임피면에서 태어난 작가 채만식.  군산에 채만식 문학관이 있어서 근대문화유산 투어의 한 코스로도 들어가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당시의 현실 반영과 비판에 집중되어 있다. 식민지 상황 아래에서 농민의 궁핍, 지식인의 고뇌, 도시 하층민의 몰락, 광복 후의 혼란상 등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그 근저에 놓여 있는 역사적·사회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작품 기법에 있어 매우 다양한 시도를 한 바 있는데, 특히 풍자적 수법에서 큰 수확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대화소설’이라는 형식은 그가 만들어낸 특이한 것이다. 그가 택한 소재와 작중인물은 다양하다. 하지만 일관된 관점은 그것들이 시대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어떻게 변모하는가 하는 점, 그리고 시대의 정의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일제강점기의 작가 가운데 가장 투철한 사회의식을 가진 사실주의 작가의 한 사람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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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생활관 전시공간.  사실적이고 흥미로운 모습으로 꾸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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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 부잔교 (뜬다리) 설치 모습.  일제가 쌀 수탈하려고 이용한 다리.  물이 들어 오면 수위가 올라 가고 빠지면 다시 내려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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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빼앗아 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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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농장경영방식, 쌀의 도시에서 공업도시로의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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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생활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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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기상 현상을 찍은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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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방향에 부잔교가 있는 거 같다.  윗층 박물관 바깥으로 나오니 베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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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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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으로 들어 오는 물품에 세금을 매기던 곳.  인천세관 군산지사 역할.   한국은행 본점과 같은 건물 양식.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공수해 온 붉은 벽돌로 1908년에 준공됨.  역시 일본의 수탈과도 관련된 상징적인 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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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 3차 축항공사기념물로 쌀가마 탑을 쌓았다.  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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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 안에 들어 가 보면 이렇게 과거 사진을 전시해 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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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군산의 역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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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군산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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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전 군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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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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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동 전경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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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세관장 사진과 제복 등, 군산세관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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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가옥>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가옥.   현재 군산시에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건물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건물이다. 일본인 농장주인 구마모토(熊本)가 1920년대에 건축하였는데, 건축 당시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별장처럼 지은 곳이다.

외부 형태는 유럽 양식을 띄며, 평면 구조는 일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양식의 응접실과 한식의 온돌방이 결합된 한식, 양식, 일식의 복합 건축양식으로, 우리나라 근대 주거문화가 들어오는 양상을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때의 토지 수탈의 실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雙泉) 이영춘 박사가 이용했다는 의료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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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국 최대 농장주인 구마모토에 의해 지어진 한식, 양식, 일식의 복합적 주거 형태를 띤 별장 주택.
가구와 실내 인테리어 등은 유럽에서 공수해 와서 건축비가 조선총독부 관저와 맞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실내 서양식 접견실과 한식방 구조, 외관은 일본식 등의 조화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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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거실 벽 위 영국 왕실박물관에서 들여 온 그림.
어둡고 멋있어 보이진 않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90년 후의 시점에서 보는 거다.  90년 전 기준에 얼마나 비싼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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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샹들리에도 엄청 비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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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장 주인인 구마모토 농장주.  1935년 기준, 논 3천 정보, 소작인 3천 가구, 가족 2만명.
'전도 유망한 조선의 농촌 산업?'  죽일넘들...  고리대금업으로 빚 못 갚은 조선 농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가고 소작인이 되게 해서 소작료를 못 내면 그대로 또 몰수하거나 굶겨 버리고, 10년간 일본 대주주 농장주는 전국에 수천개, 전북에 350개, 그 중 80%가 일본인들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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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위생에 큰 역할을 한 쌍천 이영춘 박사 (1903 - 1980).  구마모토 농장 의무실 진료소장이었다.

본관은 평창(平昌). 호는 쌍천(雙泉). 평안남도 용강군 지성면에서 종현(宗鉉)의 다섯째아들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 모교에서 병리학을 연구, 1935년 일본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바로 전라북도 군산의 일본인이 경영하는 구마모토농장(熊本農場) 의무실 진료소장으로 부임하였다.

그의 평생사업은 의사로서의 진료사업과 사회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48년 농촌위생연구소를 처음 설립하고, 후에 다른 부설 진료기관과 합병하여 재단법인 한국농촌위생원을 창설하는 등 농촌사회 및 농민생활 전반에 대한 조사연구를 하여 그 동안 47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고, 기관학술잡지로서 ≪농촌위생 農村衛生≫을 발행하였다.

진료사업으로는 1945년 개정중앙병원을 개설하여 여러 곳에 산하 진료소 및 치과진료소를 두었다. 1948년에는 정읍군에 화호중앙병원을 설치하였고, 1961년에는 개정뇌병원을 개설하여 지역농민들에게 많은 의료혜택을 주었다.

또, 그는 농어촌지역 주민들의 교육과 보건요원확보의 필요성에 따라 1951년에 개정간호학교, 1952년에 화호여자중학교, 1961년에 화호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였고, 농촌보건요원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보건사회부의 위촉을 받아 보건간호원·양호교사·결핵관리요원·가족계획사업요원의 단기수련사업도 실시하였다. 1957년에 농촌위생원 구내에 일심영아원(一心嬰兒院)을, 1965년에 군산에 일맥영아원(一麥嬰兒院)을 설립하여 농어촌에서 버림받고 의지할 곳이 없는 영아들을 양육하였다.

그는 공직으로서 대한적십자사 조직위원·대한의학협회 대의원·세브란스의과대학 재단이사·전북대학교 평의원·대한공중보건협회장·대한기생충학회장·대한기생충박멸협회장·대한가족계획협회 이사·보건사회부기생충대책 전문위원·국제로터리클럽 377지구 총재 등을 역임하였고, 제6회 국제열대의학회에 참석하여 분과 의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그 동안의 공적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대한적십자사 봉사장, 1975년 연세대학교로부터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가 죽은 다음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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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전, 유럽에서 들여 온 비싼 가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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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인의 모습은 상거지 중에서도 그런 거지가 없었다고 한다.
오전에 히로쓰 가옥을 둘러 볼 때와는 다르게 구마모토 농장에 대한 내력을 읽고 난 후엔 느낌이 달라졌다.
허물어지는 집들과 거지같은 조선인들이 이 비옥한 땅에 가득했는데, 이런 관저와 농장이 세워졌다면...
고도에 떠 있는 성처럼, 강제로 빼앗긴 내 땅을 경작하고도 또 다시 빼앗기고 굶고 그러다 모두 죽었을 것이다.

불쌍한 우리네 선조들이지만, 정말 좀 더 현명했더라면, 외세의 침략을 일찌감치 깨달았더라면, 모든 걸 자급자족해서 살아갈 수 있으니 개항은 필요 없다고 영원히 문 닫고 지내는 것이 어디 간단했을까..  어쩔 수 없이 강대국의 힘에 도움을 받아서라도 제 자리를 찾았지만 지난 100년의 시간은 이제 한 세대가 물러 나기 시작하면서 역사 책 속으로 묻혀져 가는 듯 하다.  

군산을 단지 특색있고 개성있는 관광지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처절한 과거사를 안고 남아 있는 유물들이니 만큼 역사 공부 코스로도 많이 찾고 더욱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자랑스러운 100년 전 개항의 역사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 개항은 외세의 압력에 의해 강제적이고 오욕으로 얼룩진 것이지만,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이겨낸 세대가 그 다음 후손들에게 남기고 가는 교훈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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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25 13:40
    역사를 워낙에 좋아하는 당신이라서 이정도로 썼을거야.
    훌륭한 여행후기 잘봤소이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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