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09 22:53

충민사, 진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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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사당 1호, 충민사.  관심이 있는 것은 단박에 외운다. 아산 현충사 가서 설명 들을 때 여수에 충민사가 있고 남해에는 충열사가 있고...

여수 관광 사이트를 보면 '충무공이순신' 클릭이 별도로 되어 있다.  그만큼 여수의 중요성, 이순신 장군 유적지가 많다.

 

http://www.ystour.kr/kr/yisunsin/index.jsp

 

 

충민사(국가사적 제381호)는 마래산(385.2m)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선조 34년(1601) 체찰사 이항복(1556~1618) 이 왕명을 받아 임진왜란이 끝난 뒤의 민심을 살펴본 후 통제사 이시언(?~1624)에게 명하여 건립한 것이다. 충민사를 세우자 우부승지 김상용이 임금께 이 사우()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여 선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그것을 새긴 현판을 받음으로써 이충무공과 관련된 최초의 사당이 되었는데, 함께 충무공을 기리는 통영의 충열사보다는 62년, 숙종 30년(1704)에 세워진 아산의 현충사보다는 103년 전의 일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여러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제사를 모시는 분으로 하고 의민공 이덕기, 충현공 안홍국이 좌우로 배향(: 주벽을 먼저 지내고 배향은 나중에 제사를 지냄) 되었다.

그 후 숙종 35년 충민공 이봉상을 신묘로 모시고 석천제를 창설하였으며, 영조 8년(1732)에 사우를 중수하였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충민단만 남기고 모두 철거되었으나, 고종 10년(1873) 지역 유림들의 진정으로 건물을 다시 세우고 판서 윤용술이 쓴 충민사 현판을 걸었다. 1919년에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된 후, 1947년 2칸 집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지역 주민의 노력으로 다시 세워 1993년 6월 1일 국가 사적 제381호로 지정되었다.

* 충민사 하마비
충민사 입구에 높이 1.4m, 너비 42㎝, 두께 10㎝ 크기의 작은 비가 하나 서 있는데 '하마비()'라 쓰여져 있다. 주로 궁궐, 종묘, 문묘, 성현의 탄생지나 묘 앞에 세워 경의를 표하게 한 하마비가 이곳에 있다는것은 충민사가 그만큼 중요한 곳임을 나타낸 것이다. 이 비는 원래 동산동 벅수에서 충민사 쪽으로 약 100m 쯤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으나 우회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수 충민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2013. 6.,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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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stour.kr/tourism/tour/tourMUserList.do?mode=detail&cur_page=8&trSeqId=464&m2=-1&searchWord=&m3=&others=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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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는 없고 월요일 오후 시간대였는데 관람객들 하나도 없다.

남해 충열사 방문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왠지 더 손님들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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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호남의 위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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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있는 충민사 유물전시관 부터 들렀다.  인조 때 내린, 충무공 시호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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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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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거북선) 만드는 곳.  내일 방문할 '선소'에 이렇게 만들고 보관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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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 영상물 보고 있는 중~  각각 조선과 왜군의 장군 갑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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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충열사 선생님으로부터 설명 들었던 진린 장군의 하사품 8가지 (도독인, 영패, 곡나팔, 홍소령기, 남소령기, 독전기, 귀도, 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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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위가 충민사 사당  왼쪽이 석천사 (충민사 수호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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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민사유허비

 

이 비석은 1886년(고종 23년) 이전 병술년(丙戌年) 9월에 충무공 이순신의 10세손이 세운 것이다. 1868년(고종 5년) 서원 철폐시 파비된 비를 여수향교에서 66년간 단비제(斷碑祭)를 지내다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의 조사를 피하여 충민사 앞뜰에 매장된 후, 1975년 충민사 정화사업시 화단에서 발견되어 현재 충민사유물관에 복원․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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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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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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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  누군가 흰 국화 한다발을 제단 위에 놓고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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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건물 뒤에 엄청난 기운을 머금은 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나무가 울창해서 잘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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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사당으로 올라가는 문. 왼쪽이 석천사 (이충무공을 흠모한 승군 자운선사, 옥형대사에 의하여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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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남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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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 들어가기 전 누각 '망해루'

진남관 보수 공사에 들어간다는 표지판을 보고 뜨악했는데, 나중에 전시관 직원분 설명으로는, 아직 개시를 안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 볼 수 있으니 좋다.  남해 파독 전시관은 작년에 오픈한 거라서 운 좋았었는데, 국보인 진남관은 향후 몇년 간 구경하기 힘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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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stour.kr/tourism/tour/tourMUserList.do?mode=detail&cur_page=1&m2=1&searchWord=&m3=14&others=DB&trSeqId=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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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 입구에서 내려다 본 돌산대교 쪽.  앞에는 이순신장군 거북선 모형 있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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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화대 (야간 조련 때 사용한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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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전라좌수영 진남관;  여수 10경 중 하나.  국보 304호.  전라좌수영의 본영.  조선시대 400년간 수군의 본거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건물이 있는 자리는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인데 당시에는 진해루라는 누각이었다.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타 소실되자 1599년(선조 32) 삼도 수군 통제사 겸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전라좌수영 건물로 75칸의 거대한 객사를 지어 진남관이라 이름 짓고 수군의 중심기지로 사용하였다. 후에는 역대 임금의 궐패()를 봉안하고 군수가 망궐례를 올렸으며 국경일에는 군민들이 모여 봉도식()을 거행하였다.

1716년(숙종 42) 불에 타버린 것을 1718년 전라 좌수사 이제면()이 다시 건립하였다. 1910년(순종 4)부터 50여 년 동안 여수공립보통학교와 여수중학교, 야간상업중학원 등의 교실로도 사용되었다.

정면 15칸, 측면 5칸, 건평 240평(약 780㎡)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로,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로는 제일 크다. 높은 언덕 위에 계좌정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사괴석()과 장대석()을 섞어 쌓은 기단 위에 막돌로 주춧돌을 놓고 둘레 2.4m의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평면 전체가 통칸으로 뚫려 있고 벽체도 없으며 창호도 달지 않았다.

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의 양측 합각은 널빤지로 마무리하였고 추녀 네 귀는 활주로 떠받쳤다.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건물이 웅장해 보인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는 화려한 화반()을 받쳤는데, 주심포()와 다포식()을 절충한 양식이다. 평면은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었는데 건물 내부 공간을 크게 하기 위해 동·서쪽 각각 두 번째 협칸의 전면 내진주()를 옮겨서 내진주 앞쪽에 고주()로 처리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살렸다. 각 부재에는 당시의 단청 문양이 대부분 잘 남아 있다. 당시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건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수 전라좌수영 진남관 [麗水 全羅左水營 鎭南館]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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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서울을 벗어나서 이렇게 큰 건물도 없었다고 한다.  지금 건물은 18세기 (숙종)에 지은 건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입구에 들어서도 한번에 사진이 찍히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규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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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175&cid=42840&categoryId=4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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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규모가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다.  

이 정도 (기둥사이 15) 건물은 사찰, 화랑, 궁전 행랑, 종묘 정전 등을 제외하고 합천 해인사의 경판고와 진남관 단 두곳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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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눈속임을 위해 사람 형상을 만들어 세운 돌.  여수에 7개나 있었는데 1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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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는 남해와 달리 더 후덥지근했다.  날씨가 찢어지게 좋을 정도였지만 더운데 한 여름 야외는 힘든거다.  선아는 여수 첫날부터 많이 힘들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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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광장과 돌산대교 z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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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 입구에 있는 임진왜란 주제의 전시관에서도 운 좋게 요점 정리형 설명을 들었다.   진남관은 여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뒷쪽 '종고산'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대첩에서 승리하자 승리의 북소리를 냈다는)

나중에 일제는 여수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승리의 기운과 흔적을 말살하기 위해 종고산 앞에 산의 정기를 끊어 학교를 세우고 성옆으로 도로를, 마지막으로 전라좌수영성을 파괴했다.

 

http://www.ystour.kr/tourism/tour/tourMUserList.do?mode=detail&trSeqId=113&others=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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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수영 우수영...  임금이 남도 쪽 내려다 본 입장에서 여수가 왼쪽이라 좌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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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진남관 자리에는 전라좌수영 성의 중심건물인 진해루()가 들어서 있었는데, 정유재란 때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진남관은 전쟁 직후인 선조 32년(1599) 삼도통제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새로 지은 객사()로, 숙종 42년(1716) 화재로 소실되어 숙종 44년(1718) 재건된 뒤 여러 차례 중수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남관은 당시 임금이 사용하던 궁을 제외하고 지방에 세워진 목조건축 중에서는 가장 큰 건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을 압도하는 이 건물은 길이 75m 높이 14m이며, 정면 15칸 측면 5칸의 총 75칸 규모에, 둘레가 2.4m 되는 기둥만 무려 68개에 이른다. 1910년 무렵부터 1960년대까지는 학교 교실로 사용됐는데 이로 인해 원형이 많이 바뀌었다. 1959년 보수할 때에는 옛 원형을 찾을 수 없어, 나중에 보수된 것이 분명한 벽체만을 뜯어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남관 (답사여행의 길잡이 11 - 한려수도와 제주도, 초판 1998., 14쇄 2008., 돌베개)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107&contents_id=85870

네이버캐스트 (이순신 장군이 7년간 삶을 불태운 종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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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3 09:30

    충민관에서 우리 가족은 스스로 장군을 생각하며 묵념했었고...
    제단위에 올라가 있었던 국화다발은 해군사관학교 생도일동이라고 적혀있었어.
    이순신 장군이 해군으로선 God이잖아...^^

    진남관 널직한것이 인상적이었어. 보수공사를 4년여간에 한다고 들었고 예산이 얼마드는진
    가물가물하다. 일단 백억대는 훨씬 넘어서 조금 놀랐었는데...

    진남관에서 해설사님도 조목조목 중요한 부분만 가르켜주는 쪽집게강사같았어. ^^

  • ?
    최유진 2015.08.13 10:58
    아하~ 해사에서 놓고 간 꽃다발이라고
  • ?
    2015.08.21 09:38
    해사 쫄병들이 바친 국화사진 추가했습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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