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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0 09:33

고려 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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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2331

고려 광종 (4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40791&cid=40942&categoryId=33383

성종 (3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3437&cid=40942&categoryId=33382

혜종 (2대)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2317

태조왕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86052&cid=47322&categoryId=47322

고려의 왕 계보

 

 

 

왕규의 난:  고려 혜종 때 왕규가 왕위쟁탈을 위해 일으킨 난.

역사적 배경

943년에 태조가 죽고 혜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왕권은 극도로 불안하였다. 혜종은 태자 때부터 강력한 호족출신인 박술희(朴述熙)의 지지와 후원을 받고 있었으나, 왕권을 노리는 적대세력은 많았고, 더 강력하였다.

왕규(王規)는 혜종의 후견세력인 박술희 세력을 제압하고, 왕위를 탈취하기 위해 노골적인 행동을 취하였다. 요컨대, 혜종대의 정정(政情)불안과 왕위쟁탈전의 원인은 혜종의 세력기반이 미약한 데 있었다.

왕규는 광주(廣州)를 기반으로 한 호족출신으로 태조를 섬겨 대광(大匡)까지 되었다. 또한 두 딸을 태조의 제15·16비(妃)로 들였는데, 제16비는 광주원군(廣州院君)을 낳았다. 이처럼 왕규는 강력한 호족으로, 왕실의 외척으로서 태조 만년에는 막강한 실력자로 있었다.

그는 태조에게는 충성했으나, 혜종의 왕권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혜종을 죽이고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세우고자 하였다.

경과와 결과

그는 두 차례에 걸쳐 혜종 살해를 시도하였다. 한번은 혜종의 침실에 자객을 잠입시켜 죽이려 했는데, 마침 혜종이 잠에서 깨어 자객을 한 주먹에 때려 죽여서 위기를 모면하였다.

또, 한번은 직접 무리를 이끌고 밤에 혜종의 침실을 급습했으나 혜종은 이미 다른 데로 거처를 옮긴 뒤였다. 혜종은 최지몽(崔知夢)이 무슨 변이 있을 테니 거처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몰래 중광전(重光殿)으로 피한 것이다.

왕규의 세력이 혜종의 왕권을 압도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세력기반이 약한 혜종은 그를 문책하거나 응징하지 못하였다. 당시 혜종의 후견인으로서 왕규와 대립관계에 있던 박술희 역시 자신의 신변보호에 급급하였다.

그리고 왕실 내에서도 혜종의 이복동생 요(堯 : 뒤의 定宗)는 서경(西京)의 왕식렴(王式廉)세력과 결탁, 왕위를 노리고 있었다.

이에 혜종은 주위에 항상 갑사(甲士)들을 수행시켰고, 암살 위협에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없었다. 혜종이 즉위 이래 병석에 눕게 된 것도 이러한 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결국, 왕규의 모역(謀逆)은 요와 결탁한 왕식렴의 서경 군사력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만다. 『고려사』에는 요가 왕식렴 세력과 결탁한 것은 왕규의 모역에 대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혜종의 왕권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요의 왕위계승을 위한 포석이었던 것이다.

요는 945년에 서경 왕식렴의 군사력을 개경으로 불러들여, 왕규를 갑곶(甲串)에 귀양보낸 뒤 사람을 보내어 죽였으며, 그 무리 3백여 명도 죽였다. 한편, 혜종의 후견세력인 박술희도 살해하고, 그 책임을 왕규에게 전가시켰다.

박술희는 태조의 유명(遺命)까지 받은 중신(重臣)이었으므로 살해의 진상을 은폐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는 이처럼 왕위계승에 방해가 되는 적대세력을 일소한 뒤 왕위에 올랐다.

의의와 평가

왕규의 난은 결과적으로 요의 왕위계승에 명분을 주고, 또 일을 쉽사리 성취시키는 데 기여한 셈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왕규의 난 [王規―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왕규의 난은 역사 학자들에 의해 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혜종을 보필하라는 태조의 유지를 받은 왕규는 당시 군사적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혜종의 보호를 받는 존재였으며, 그의 손자인 광주원군은 왕위 계승 서열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왕규가 반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이 사건은 왕위를 노린 왕요와 왕소(광종)의 음모로 보고 그들의 배후 세력이었던 '왕식렴의 난'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광주원군은 실제 이름이나 태어나고 죽은 해, 무덤 등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단, '고려사-열전'에는 광주원군의 최후에 대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라고만 기록되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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