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월미도 쪽에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 2008년에 문을 열어서 시설도 깨끗하고 역사 등 배울 내용이 많다.
인천, 군산, 그리고 부산 등은 개항기 근대 역사를 여는 관문이다. 이후 계속되어 온 처절한 아픔은 말할 것도 없고..
입장료 무료. 아침 일찍 오픈하자마자 도착해서 둘러 보기 좋았다.
http://mkeh.incheon.go.kr/
'삶의 터전을 찾아서' 말은 거짓말이다.
나라 땅을 강제로 빼앗겨서 살 길이 막막하니 떠난 거. 그래서 한국 이민 역사는.. 슬플 수 밖에 없다.
1903년 하와이로 이민가는 공고가 최초였고 (그 이전, 이미 연해주가 더 먼저)
인천항 축소도. 그 당시 유명했던 근대 문화 건물들을 특별히 부각시켜서 만들어 놓았다
국제도시로 역사적인 포문을 연 것은 좋았지만..
이후 강대국들의 약탈 역사도 시작된다.
최초에는 여권을 '집조'라고 불렀구나.. 처음 들어 본 단어 같다.
1903년 하와이로의 최초 이민 공고가 난 후 이민객들을 실었던 배 모형
121명이 제물포를 떠나서 나가사키에서 신체검사 결과 19명이 탈락하고, 하와이로는 102명이 탔는데 검역에서 16명이 또 탈락하여
결국, 86명만 하와이 호놀룰루에 상륙했다
이민 배를 타고 갔던 선조 한분의 후손들이 보관한 그 때 당시 증언 육성을 들려 준다. 고생 고생 개고생 ㅜ 갑판 위로도 못 올라가고 으~
제물포에서 일본 나가사키를 먼저 경유했다는 내용
갤릭호 모형
하와이 이민사부터 시작하여, 멕시코, 남미 지역으로 까지 확대하여 이야기를 들려 준다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 현황
이민자들의 거주 환경. 근처에 채소를 심어 놓고 먹고 살았던
결혼 상대 신부를 사진 보고 결혼 시켰다는
초기 이민자들의 교육열
교회가 중추 역할을 했고 교육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에도 큰 역할을 했다.
멕시코 이민사는 더 비참하다. 1905년 천 여명의 이민 노동자들은, 어떤 중개인에 의해 단 한차례의 불법 노동 이민으로 끝났던 결과.
4년간의 고되고 비참한 생활 끝에 멕시코 내란 상황 등 때문에 약 3백여명이 쿠바로 이주하고..
멕시코 에네켄 (알로에) 노동 일은 비극이었다. 찔리고 베이고 가시 박히고 상처 투성이에 엄청 채찍질 해댔다고 한다.
멕시코도 쿠바도, 조국으로 돌아 오지도 못하고 현지인들과 결혼하거나 정착하고 혼혈은 심해져서 조국과의 단절 때문에 정체성은 급격히 상실되어 감
아르헨티나로의 이민 정착 생활은, 빈민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르헨티나 최초 이민자들이 반공포로들 이었다니 놀랍다. 인구가 많아서 이민 장려 정책을 썼다는
브라질로의 최초 이주자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귀화했던 사람들이고, 6.25 직후에 반공포로 50명이 무국적으로 들어 갔다
전 세계 이민자들이 나가 있는 나라, 숫자 등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