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 10월 말 모임. 대둔산 (논산 완주 경계) 숙소 가기 전 오전에 들른, 논산 명재고택
10시 정도 도착해서 문화해설사 선생님 얘기를 들으며 한적하게 구경 했다
http://www.myeongjae.com/
명재 윤증 선생 집인데 후세 사람들이 너무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듯 하여 '명재고택'으로 (원래 윤증선생고택) 바꾸었다고 한다. 숙종때 지어져 300년간 잘 보존해 내려 왔다. 소론의 수장으로서 여러 관직에 제수되었어도 고사하고, 후학들을 공부 시키고 과거에 급제시켰던 인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29440&cid=42672&categoryId=42672
고택 입구를 찾는데 약간 시간 걸림
정면에 보이는 사랑채. 오른쪽으로 사당. 왼쪽으로 안채
비싼 장이 담겨져 있는 장독대들. 큰 느티나무 세그루가 집을 감싸 안은 모습
뒤에 받쳐 주는 산이 있고, 수백년 나무들에 오롯이 둘러 쌓여 있는 공간
사랑채와 안채에서도, 바깥에서도 잘 안 보이도록 가려진 우물
사랑채로 들어가는 길이 이렇게 또 있다. 오른쪽으로 우물이 있고
해시계 역할했던 주춧돌
금강산 모양의 돌이라고 한다.
본채 뒷뜰로 들어가면 안채 공간이
신기하게 '원근법'이 적용된 공간. 이쪽에서 바라 볼 때는 점점 좁아지는데
좁아 보였던 쪽에 서서 반대 방향을 다시 바라 보면 오~ 신기 신기 @@
양지 바른 언덕 명당에 자리 잡고 있는 장독대
자연스럽게 나무 무늬를 맞춰서 짠 것이라고 한다
연못 앞에서. 큰 배롱나무에 가려 인물이 작게 나와 얼굴이 잘 안 보이지만 풍광이 멋지다
(지식 백과 중..) 충남 논산군 노성면 교촌리에는 숙종 때 소론의 지도자였던 윤증(尹拯)의 고택이 있다.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으로, 백제시대 노성산성이 있는 노성산을 배산으로 노성향교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이 댁은 국도에서 마을길로 접어들어 조금 올라가면 나온다. 집 앞으로 직접 보이는 시선을 막기 위한 등선과 커다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 있다. 그 옆으로 윤증 선생의 어머니 공주이씨 정려각이 팔작지붕으로 꾸며져 있다. 윤증 선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정려문을 읽어 봐야 한다. 정려문에는 윤증 선생의 생애를 설명하고 있다.
내용에 의하면 이곳에 있는 정려의 주인공은 문경공 미촌 윤선거의 부인이며, 명재 윤증 선생의 어머니다. 윤선거는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1636년 청국의 사신이 왔을 때 유생들을 거느리고 청나라 사신 용골대를 죽이고 명나라에 대한 의(義)를 지키고자 상소를 올렸다. 그해 겨울, 청 태종이 병자호란을 일으키자 윤선거 선생은 강화도로 피난을 떠났다. 강화도마저 함락되자 어머니는 청군에게 죽느니 순절을 택하였다. 이를 계기로 윤증 선생은 조정의 관직에 임명되어도 조정에 나가 벼슬을 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순절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며 사양하였다. 윤증의 덕행에 많은 선비들은 그를 ‘백의정승’이라 대우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207700&cid=48165&categoryId=48210
논산 파평 윤씨 윤증 종가 장김치 · 가지소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