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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이야기] 어느 멋진 인생… 94세의 은퇴

기사입력 2009-05-18 03:18  



오는 20일 은퇴식을 갖는 김득황 동방사회복지회 전 이사장이 서울 연희동 자택 앞 마당을 산책하고 있다. 그는 지난 36년간 6만여명의‘버려진’아이들에게 새 가정을 찾아줬다./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36년간 6만명에 양부모 맺어준 동방사회복지회 창립자 김득황씨

아이들 해외 보낼때마다 한명한명 "미안하다" 기도

"훌쩍 커 찾아온 아이들 내 인생의 보람이죠"



환갑을 두해 앞둔 1973년 4월부터 백발이 성성한 90대 노인이 된 2009년 3월까지, 그는 만 36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사무실에 나갔다. 푸른 눈의 양부모를 만나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나는 어린 아이들이 하루 너덧 명씩 공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그의 방을 거쳤다. 그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끌어안고 올망졸망한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나직이 기도를 올렸다.

"어린 것을 상처 입혀 또 이렇게 떠나 보내오니, 꼭 이 생명을 지켜주시옵소서."

'입양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방사회복지회 창립자 김득황(金得榥·94)씨가 오는 20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공식 은퇴식을 갖는다. 동방사회복지회는 홀트아동복지회·대한사회복지회와 함께 국내 3대 입양아 보호단체로 꼽힌다. 1973년 4월 창립 이후, 6만여명의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이 단체를 통해 양부모를 찾았다. 4만5000여명은 해외로, 1만5000여명은 국내로 입양됐다.

그 긴 세월, 김씨는 어린 것들의 손을 하나하나 꼭 쥐고 기도를 올렸다. 전예환(여·48) 동방사회복지회 아동보호부장은 "창립자는 해외로 입양 가는 아이들을 특히 마음 아파했다"며 "아이가 공항으로 출발하면 차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두커니 길에 서서 '미안하다, 아가야'라고 중얼거리며 자주 우셨다"고 했다.

지난 3월 고령(高齡)으로 이사장 자리를 내놓은 뒤 두달 만에야 은퇴식을 치르게 된 것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밖에 한 게 없는데 무슨 은퇴식이냐"고 사양하는 김씨를 지인들이 나서서 설득하느라 시간이 걸린 까닭이다.

15일 찾아간 서울 연희동 김씨의 자택은 허름했다. 그는 수십년 사용해서 온통 금이 간 갈색 가죽소파에 앉아 이북 사투리로 띄엄띄엄 말했다. 1915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5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14세 때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라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해방 후 귀국했다. 부친은 황무지를 일궈 일가를 부양했다고 한다.

"일제 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아이들이 죽는 걸 많이 봤습니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으로 죽고, 총 맞아 죽고…. 너무 쉽게 죽어가는 아이들이 정말 불쌍했습니다."

6·25전쟁 직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가족부)에 근무할 때, 그는 서울 신계동의 일본식 목조 주택에 살았다. 김씨는 퇴근 후 커다란 양철통에 팥죽을 끓여서 인근 다리 밑이나 움막에서 지내는 굶주린 아이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김씨의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아이들도 많았다. 딸 김진숙(63) 동방사회복지회장은 "아버지는 배고프다고 찾아온 아이들을 한번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밥과 죽을 줬다"고 했다.

공무원 월급으로 5남1녀를 키우면서도 전쟁고아 3명을 수양딸로 거뒀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였다.

김씨는 "내가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니라, 길에 그대로 두면 굶어 죽을 게 뻔해서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수양딸들은 현재 목사·교사·주부가 됐다.

1967년 내무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한 김씨는 어린이 구호단체인 한국십자군연맹 등에서 일하며 고아원 지원사업을 하다가, 입양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이들은 시설보다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생기고, 교육 기회도 많아지니까요."

그는 1973년 4월 미국 자선단체와 국내외 교회들의 도움을 얻어 서울 태평로에 82㎡(25평)짜리 사무실을 차리고 '동방사회복지회' 간판을 걸었다. 직원은 10명이었다. 후원금이 넉넉지 않았던 까닭에 조금이라도 임차료가 싼 곳을 찾아 숱하게 이사를 다녀야 했다. 1985년엔 경기도 평택에 양부모를 찾기 어려운 장애아들을 위한 보호시설을 짓기로 했다. 주민들이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면 땅값이 안 오른다"고 거세게 반대했다. 김영복(62) 동방사회복지회 사무총장은 "(창립자인 김씨가) 일일이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머리를 숙이고 사정했다"고 했다. 이듬해 장애아 480여명과 미혼모 50여명을 수용하고, 초·중·고등학교까지 완비한 동방평택복지타운이 완공됐다.

18년간 그의 비서로 일했던 김정애(여·50)씨는 "입양아들이 1년에 400명쯤 찾아왔는데, 이사장님은 공식일정을 취소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모두 만났다"며 "아이들을 안고 '양부모님께 효도하고, 한국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다.

김씨는 평생 휴대전화와 자가용 없이 살았다. 부하직원들이 이사장용 차량을 구입하려 했다가 "돈은 아이들한테 써야지 왜 쓸데없는 데 쓰냐"고 불호령을 들은 일도 있다. 크리스마스 때는 2000장이 넘는 카드를 직접 써서 해외에 입양 간 아이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잘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내 인생의 보람이었다"고 했다. 라면박스에 담긴 채로 서울역에 버려진 생후 6개월짜리 여자아이가 미국에서 소아과 의사가 됐을 때, 쓰레기통에 버려진 생후 18개월짜리 남자아이가 호주에서 소믈리에가 됐을 때, 생후 9개월짜리 청각장애아가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청각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가 됐을 때가 그때였다. 주한 미국대사관 외교관이 돼서 인사하러 온 입양아도 있었다.

차분하게 지난 세월을 회고하던 김씨는 이야기가 4년 전 세상을 떠난 부인 김옥신(여·당시 89세)씨에 이르자 목이 메는지 말을 멈췄다. 김씨가 보건사회부 국장으로 일할 때도 부인은 6남매에 수양딸들까지 아홉 명을 키우느라 삯바느질과 뜨개질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그 사람은 나 없는 데서 애들한테 '아버지는 훌륭한 일 하시니까 너희도 본 받으라'고 했답니다. 냉면을 참 좋아했는데, 평생 외식 한번 제대로 못 시켜줬어요. 그래도 원망 한마디 없었지요. 원망이라도 했으면 덜 미안하지…."

[조백건 기자 loog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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