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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능선 전투:  

피의능선이란  양구군 동면 월운리 북쪽의 능선으로, 983고지·940고지·773고지 그리고 이와 연결되는 산맥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말한다. 피의능선전투는 한국군 제5사단 36연대가 미군 제2사단에 배속되어 1951년 8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42만여 발의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치른 격전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 1개 연대 규모의 사상자와 북한군 1개 사단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군 신문 <성조지 Stars and Stripes>가 이 전투를 피의능선전투라 이름 지었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한국군이 승리함으로써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나게 되었으며 북한군 1,480여 명이 사살되고 70여 명이 생포되었다.
양구군은 피의능선전투 외에도 단장의능선·펀치볼·백석산·도솔산·가칠봉·1090고지(일명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등 수많은 격전을 치른 지역이다. 피의능선전투 전적비에서 약 2km 지점에는 펀치볼지구전투 전적비가 조성되어 있다.



가칠봉 전투:  1951년 9월 4일 ~ 10월 14일

가칠봉 전투(1951년 9월 4일 ~ 10월 14일)는 1951년 6월 23일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처음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국 19 군단장이 양구 북방의 가칠봉 일대에 국군 5 보병사단을 투입하여 고지를 점령하게 한 작전이다. 북조선은 27사단과 12사단을 투입하여 반격에 나섰으나, 40여일의 격전 후에 결국 한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휴전 회담이 시작된 후 유엔군은 미국 1 해병사단과 국군 1 해병연대를 주축으로 강원도 양구군 일대의 펀치볼 전투를 8월 30일에 시작했다. 가칠봉 전투는 펀치볼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와 거의 동시에 시작된 전투로 이 일대를 유엔군과 한국군이 장악하기 위한 전투였다.  (피해 상황:  전사 1,102명, 포로 250명 전사 692명, 실종 437명)



단장의 능선 [斷腸─稜線]:  6 ·25전쟁 때의 격전지.  

강원 양구(楊口)와 인제(麟蹄)의 중간 지점에 있는 일련의 고지 이름이다. 당시 이 고지는 금성(金城) 지구에 위치한 적의 후방기지를 그대로 내려다볼 수 있고, 아군의 동부 전선에서의 진격작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전략적 요지였다. 1951년 9월 13일 한국군 제7사단과 미군 제2사단 병력이 연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9월 18일 일단 이 고지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적이 곧 맹렬한 반격을 해 옴으로써 그 후 약 1개월 동안 일진 일퇴의 백병전이 거듭되었으며, 10월 13일 끝내 유엔군이 적의 최후 거점을 점령함으로써 이 작전은 종료되었다. 이 전투에서 유엔군은 3,700여 명, 북한공산군은 2만 5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처절한 전투 양상을 상징하여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도솔산 전투:  1951년 6월 4일부터 6월 19일까지 강원 양구군에 있는 도솔산에서 벌어진 전투.

한국 해병대의 승전(勝戰) 전투로서 24개의 목표고지를 점령하여 미국해병 제1사단장으로부터 “한국 해병대가 아니었다면 이 전략적 요충지를 수중에 넣지 못하였을 것이다”라는 극찬을 받은 전투이다. 도솔산 지역은 양구와 인제 사이의 태백산맥 중에서 가장 험준한 곳으로, 평균 해발고도가 1,000m 이상이고, 양양~철원을 삼각의 저변으로 하여 원산을 그 정점으로 하는 중동부의 삼각산악지구에서 가장 중심이 되므로 전략상의 가치 역시 컸다. 당시 대치하고 있던 북한군은 막강을 자랑하는 제5군단 예하의 제12사단이었다.

최초의 도솔산 일대에 대한 공격은 미국 해병사단이 담당하였는데, 많은 손실만을 내고 성공하지 못하여 한국군 해병사단에 인계되었다. 6월 4일 아침 8시를 기해 시작된 한국 해병 제1연대의 공격은 9일간의 격전 끝에 캔사스선(Kansas Line:북한군의 공격기도를 분쇄하고 방어에 유리한 지역을 설정한 주저항선으로서 임진강∼화천호∼양양을 잇는 선) 내의 15개 목표고지를 일단 점령하는 데 성공하고 다음 목표를 향해 계속 전진하였다. 공격기간 중 해병대의 손실도 북한군에 못지않게 컸는데, 이는 지형이 험난하여 공격에 난관이 많았고 특히 계속된 강우와 짙은 안개로 항공 및 야포 지원이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해병의 끈질긴 전투능력 때문이었다. 이후 제2단계 작전으로 옮아가 6월 19일 도솔산에 대한 마지막 야간공격으로 정상을 정복하였다. 그 후 도솔산전투는 해병대 5대작전의 하나로 꼽히게 되었고, ‘도솔산의 노래’라는 전투 군가(軍歌)를 제작하여 그날의 승리와 기백을 선양하였다.



펀치볼지구 전투:  

'펀치볼'이라 불리는 해안분지(亥安盆地)를 확보하기 위해 1951년 8월 29일부터 10월 30일까지 서화리·가칠봉·피의능선·1211고지·무명고지 일대에서 벌인 전투에서 죽어간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세웠다. 당시 한국군 제3·제5사단, 해병 제1연대와 미군은 인민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펀치볼과 주변 고지를 점령하였다. 당시의 전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인민군 사망자 2,799명·포로 557명, 한국군 및 미군 사망자 428명·부상자 1,062명으로 집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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