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2 15:55

동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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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동구릉.  
조선 왕조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하여 왕과 왕후들 무덤군이다.  이 쪽 지역, 엄청 풍수가 좋은 곳이겠지.
입장료는 어른 천원.  초등생 무료

http://donggu.cha.go.kr/n_donggu/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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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동구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능. (naver)

9릉 17위의 왕과 왕비, 후비 등을 안장한 왕릉이다. 사적 제193호. 1408년(태종 8) 태조의 건원릉(健元陵) 터로 쓰여지기 시작한 뒤 조선시대 일대를 통해 족분(族墳)을 이루고 있는 왕릉군(王陵群)이다.

기록에 따르면 태조가 죽은 뒤 태종의 명을 받아 서울 가까운 곳에서 길지(吉地)를 물색하다가 검교참찬의정부사(檢校參贊議政府事) 김인귀(金仁貴)의 추천으로 하륜(河崙)이 양주검엄(楊州儉嚴)에 나아가 보고 능지로 택정하였다고 한다.

항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동구릉 상지전설(相地傳說)은 태조가 생전에 무학(無學)을 시켜 자기와 후손이 함께 묻힐 족분의 적지를 택정해서 얻은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학의 법술이 신통함을 빙자해 만든 전설에 불과하다. 오히려 9개의 능 하나 하나가 조성된 사정을 보면 일일이 여러 곳으로 길한 능지를 물색하다가 이곳에 귀착한 것이라 하겠다.

동구릉이라고 부른 것은 문조(文祖)의 능인 수릉(綏陵)이 아홉 번째로 조성되던 1855년(철종 6)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동오릉(東五陵)·동칠릉(東七陵)이라고 부르던 사실이 실록에 전하고 있다.

동구릉의 지세가 풍수지리 이론에 합당한 지세임은 감여가(堪輿家 : 풍수지리를 공부한 사람)들이 여러 대를 걸쳐 9개의 능터를 찾아낸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태종 때 명나라 사신들이 건원릉을 둘러보고 그 산세의 묘함에 감탄해 “어떻게 이와 같은 천작지구(天作地區)가 있는가? 필시 인간이 만든 조산(造山)일 것이다.”라고 찬탄하였다 한다.

현재 59만여 평을 헤아리는 광대한 숲에 태조의 건원릉을 비롯해 제5대 문종과 그 비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현릉(顯陵), 제14대 선조와 그 비 의인왕후(懿仁王后),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능인 목릉(穆陵),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능인 숭릉(崇陵),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의 능인 휘릉(徽陵), 제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端懿王后)의 능인 혜릉(惠陵), 제21대 영조와 그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능인 원릉(元陵), 제24대 헌종과 그 비 효현왕후(孝顯王后),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의 능인 경릉(景陵), 제23대 순조의 원자인 문조와 그 비 신정익왕후(神貞翼王后)의 능인 수릉 등 9개의 능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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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  헌종의 아버지 추존왕 문조와 신정익황후 조씨의 합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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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 아래 도토리 줍기에 여념없는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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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릉.  5대 문종과 그의 비 현덕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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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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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 건원릉.  멀리 봉분 위로 억새풀이 심어져 있는 묘가 보인다.  고향 땅 함흥을 그리는 의미로 태종이 억새를 가져다 심었다는 일화


(능의역사) - 동구릉

1408년(태종 8) 태종은 1대 태조의 건원릉을 조성하였다. 태조는 1408년 5월 24일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74세로 승하하였다. 그해 6월 12일 검교 판한성부사 유한우, 전 서운정 이양달, 영의정 하윤 등이 원평, 봉성, 행주 등의 길지를 후보지로 내세웠으나 채택되지 못하였고, 6월 28일 지금의 구리시인 양주의 검암에 산릉지를 정하였다.
7월 5일에 충청도에서 3,500명, 황해도에서 2,000명, 강원도에서 500명 등 총 6,000명의 군정을 징발하여 7월 말을 기하여 산릉의 역사를 시작하게 하고 석실을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9월 7일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빈전에 나아가 견전례를 행하고 영구를 받들어 발인하였다.
태조는 생전에 계비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해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貞陵)에 자신의 묏자리를 마련해두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태종은 부왕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신덕왕후의 능을 도성 밖으로 이장하고, 태조의 능을 지금의 자리에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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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뻗은 돌길을 보면, 왼쪽이 '신의 길'로 오른쪽이 '왕의 길'이라고 하여 신의 길은 딛지 말고 왕이 다닌 길로 걷도록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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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길은 왼쪽 앞 부분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이어지고, 왕도는 그 뒷쪽 길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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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 안에 제사상을 차려 놓고 뒤의 봉분을 향하여 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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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고황제건원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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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가을 햇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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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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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숲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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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릉.  1688년(숙종 14) 조성된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이다.
봉분 뒷쪽으로 소나무 산이 아담하게 아치형을 이루어 아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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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릉.  21대 영조와 정순왕후 계비의 쌍릉.  능 사진이 없네..
무수리에게서 태어난 숙종의 서자 영조는 강하고 결단력 있는 군주였으나, 내면으로는 자신의 출생 신분과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정쟁에 휘말려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 등 평생 큰 아픔을 삭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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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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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0.23 11:17
    왕족들의 공동묘지...주변에 이런 좋은 공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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