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9 17:19

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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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이튿날은, 문경새재 1 ~ 3관문 걷기.
하늘은 반짝 개고 기온도 별로 낮지 않았는데, 새재 입구에 도착하니 들판이라 그런지 바람이 불어서 머리가 딩딩 시려웠다.

http://saejae.gbmg.go.kr/open.content/ko/
문경새재도립공원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 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 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민요 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 곳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터만 남아있는 것을 1999년 중창하였고,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 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남아있다.

그리고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申砬) 장군, 동학(東學)과 의병(義兵)이 남긴 사담(史談)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를 1974년 지방기념물(제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어 전국에서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문경 땅 바로 이 길은 조선조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차 한양으로 넘나 들던 옛적 그대로의 길이다. 영남대로인 문경새재는 문경의 옛 지명인 문희에서 드러나듯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하여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하였다. 또한 택리지에 ·조선 선비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수많은 선비와 길손들이 이 곳을 왕래 하였음을 헤아릴 수 있고, 아울러 장원급제한 선비들도 상당하였음에 연유하여 이 길을 "장원급제길"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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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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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관 - 영남 제1관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으며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라고 한다. 정면 3칸(間)과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며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 길이 188m이고, 부속 성벽은 높이가 1~3m, 폭 2~4m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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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극 셋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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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죽령을 지나 대미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청화산, 속리산으로 이어져 소백산맥을 이루어 나간다.

삼국과 고려 때에는 문경 관음리에서 충북 중원군의 수안보로 통하는 큰길인 하늘재(계립령)가 있었고, 문경 각서리에서 괴산군 연풍으로 통하는 소로인 이화령이 1925년 신작로로 개척되어 지금의 국도3호선이 되었다.

옛날에는 1978~1979년 확장 포장된 이우리재(이화령)와 가은에서 충북 괴산으로 연결된 불한령, 문경군 농암에서 충북 삼송으로 다니던 고모령 등이 있어 신라와 고구려,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이곳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길[嶺南大路]이었던 곳이며 옛날의 유지(遺址)로는 원터, 교귀정, 봉수터, 성터, 대궐터 등이 잔존하고 있다. 조령로의 번성을 말해 주듯 조령로변의 마애비는 관찰사, 현감 등의 공적을 새겨 놓았으며, 주흘관 뒤에는 선정비, 불망비, 송덕비가 비군(碑群)을 이루고 있다. 주위의 주흘산, 조령산, 부봉과 각 골짜기마다 동·식물자원이 자연 그대로 보존된 관광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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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틀 (기름틀) 바우
기름틀의 누름틀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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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원터
지금 조령원으로 전하는 제1관문에서 1㎞ 정도 떨어진 원터가 동화원이며 새재아래 동화원이라는 마을에 조령원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문을 원터를 발굴한 신영훈 전문위원이 제기한 바 있다.

1530년(중종25) 이행 등이 증보 개정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조령원은 새재의 고개 동쪽에 있다고 해서 지금의 동화원 동리를 지칭하고 동화원은 현의 서북쪽 15리에 있다고 하여 지금 조령원 터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문경현지에서는 위치의 기록이 없고 열 개의 원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라고 간단히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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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院)이란 지금의 여관과 같았다. 화봉원에서 고려의 유희가 시를 읊는 것을 보아 고려 때부터 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권근의 기문(記文)에 의하면 나라의 들에는 10리 길에 여(廬-초막)가 있고 30리 숙(宿-여관)이 있었으며, 후세에는 10리에 장정(長亭-쉬는 집) 5리에 단정(短亭-쉬는 작은 정자) 하나씩이 있었는데 모두 나그네를 위한 것이었다.

나라에서 파발을 두어 사명(使命)을 전하고 원(院)을 두고 상인과 여행자에게 혜택을 주되 공과 사의 구별, 상과 하의 구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므로 파발에는 각각 관리가 있어 그 직책에 힘썼으나 원에는 다만 밭을 주고 사람을 모집하여 그것을 주관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평원이나 기름진 땅 안에 있는 원에도 주관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 가끔 있었다. 하물며 깊은 산골의 험하고 메마른 곳에 있는 원에는 주관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들에는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서 원(院)이 없어도 잘 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골짜기 외딴 곳에서 해는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고 사람과 말은 지치고 범이나 표범의 두려움, 도둑의 염려 등 길손의 걱정은 이에 더 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조령산성 안에 조령원(鳥嶺院)과 동화원(桐華院)이 있고 현의 서쪽 15리인 이화령 아래 요광원(要光院)이 있었다. 하늘재 밑에 관음원(觀音院)이 있고 현의 북쪽 4리에는 화봉원(華封院)이 있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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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해서 에너지원으로 쓰기 위한 송진을 채취하려고 상처난 V자
'V'자가 무슨 표식처럼 써 놓은 줄 알았더니 저렇게 깊게 후벼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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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
새재를 넘던 선비, 상인, 과거 보러 가는 사람들 등 쉬어 가던 주막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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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귀정
문경읍 상초리 조곡관(鳥谷關)과 주흘관(主屹關)의 중간지점인 용연(龍淵-龍湫)위에 있다. 체임(遞任)하는 신구관찰사(新舊觀察使)의 교인처(交印處)로 성종조 신승명이 건립했다. 유지(遺址)와 김종직(金宗直)의 시(詩)가 전해 왔으며 1999년 10월 문경시가 중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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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귀정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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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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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귀정 바로 맞은 편, 용추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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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궁예' 마지막 찍었던 장소 근처.  물이 참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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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구리바위
바위 밑에 큰 꾸구리가 숨어 있다가 사람이 앉으면 바위를 움직였다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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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문경새재 과거길 이라고 한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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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됴심 표석
이 비는 상초리 산42-8번지에 있다. 교귀정을 지나 제2관문을 못미쳐 노변의 오른쪽에 세워 있다. 다듬지 않은 돌(높이 183㎝, 폭 75㎝ 정도)에 "산불됴심"이라고 한글로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퍽 오래된 조선조 후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정조 때 별장이 잡인의 통행을 단속할 때 역시 관방(關防)유지를 위해서는 산불조심이 무엇보다 급선무였고 일반서민이 잘 알도록 한글 비를 세우지 않았나 생각된다. 자연보호의 시금석(始金石)이고 「조심」을 고어(古語)인 「됴심」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기 드문 한글 비이며 지방문화재 자료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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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관문.  조곡관 - 영남 제2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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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中城) 이라고도 한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關)은 영성(嶺城 : 3관문)과 초곡성(草谷城 : 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鳥東門) 또는 주서문(主西門)을 설치하였다.

그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였다. 이렇게 복원한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鳥東門)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鳥谷關)이라 개칭하였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가 3.6m, 길이 5.8m이다.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 높이는 4.5m, 폭 3.3m, 길이 73m이고, 좌우의 성벽의 높이는 2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100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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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관문 뒷쪽.
(평상에 앉아서 간식 먹다가 바람이 세차게 불고 춥고 난 하산하기로~~  발만 안 아파도 ㅜ
인원 반은 3관문까지..  나중에 사진 보니 눈도 왔고 근사하더라.)

((3관문 조령관: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으며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 4.5m, 폭 3.2m, 길이 6.2m이고 성벽의 높이는2~3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며 대문의 높이는 3.9m, 폭 3.56m 두께 1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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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관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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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못 찍었던 사진.  문경새재자연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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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뒤, 옛길박물관
http://oldroad.gbmg.go.kr/open.content/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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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 1코스 9.1키로 새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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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막걸리.  쓰기만 하고 맛 없었다.  우리네 주당들 다 안 먹을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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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 입구 관광식당 골목 아래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며 퍼져 버렸다.  발은 이미 내 발이 아닌지 오래되었고..
3관문 다녀 온 일행들 기다리며..  


식사는 그 동안의 이미지와 코스와는 좀 안 어울리는 듯한, 돈까스 집으로..
미성레스토랑:  경북 문경시 점촌동 247-1 (054-555-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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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돈까스.  뚜들기는 망치가 아닌, 피망 +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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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면 찐득한 치즈가 나온다.  포만감 있게 잘 먹어서 든든했다.
늦은 밥 (점심) 먹고 출발 시간이 5시였으니...  서울에 8시 15분 쯤 도착


지방으로 여행가면, 언제나 날씨, 계절, 혹은 번잡스러웠는지 조용했는지 등 분위기가 일정한 선입관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문경 점촌 명동길이 왠지 일요일 오후라도 을씨년스러웠고..
문경새재길은 바람만 안 불었으면 좋았겠지만... 바람에 시달려서 머리가 좀 아팠다.  어차피 단풍철에는 진입도 못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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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27 17:12
    날씨 깨끗해서 좋았어..
    돈까스는 정말 어릴적에 먹던 그 맛이두만...배부르게 하는것에 목적을 두는..특색있고 괜찮았어..(자기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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