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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한양도성

http://seoulcitywall.seoul.go.kr/main/index.do

 

2코스 낙산구간

http://www.koreatrails.or.kr/course_view/?course=664

 

한양도성 스탬프투어 (종로테마여행)

http://tour.jongno.go.kr/tour/main/contents.do?menuNo=1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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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지문:  서울 도성에 딸린 8문 중의 하나로서 서울 도성 정동(正東)쪽에 있으며 원래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동대문이라고 부른다. 1396년(태조 5)에 건립되고 1453년(단종 1)에 중수되었으며, 1869년(고종 6)에 이르러 이를 전적으로 개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화강암의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虹霓門)을 축조하고 그 위에 중층의 문루를 세웠으며 문 밖으로는 반달 모양의 옹성(壅城)을 둘리고 있으나 이것도 1869년(고종 6)에 다시 개축한 것이다. 문루의 아래층은 주위 4면을 모두 개방하였으나 위층은 기둥 사이를 모두 창문과 같이 네모나게 구획하여 각각 한 짝 열개의 판문(板門)을 달았다. 중층(重層)의 우진각 지붕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는 중앙에 고주(高柱)를 일렬로 배치하였으며 위·아래층의 대량(大樑)들은 모두 이 고주에서 양분되어 여기에 맞끼워져 연결되는 맞보로 되었다. 위층에는 마루를 깔았고 아래층에는 가운데 칸에만 마루를 깔았는데 이는 그 아래에 위치한 홍예문의 윗 부분을 가리는 구실을 한다.  위층 천장은 이 문루가 다포집 계통에 속하는 건축이면서도 성문이라는 특수한 건물이기 때문에 지붕 가구재(架構材)를 전부 노출한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공포(包)는 아래층이 내삼출목(內三出目) 외이출목(外二出目)이고 위층은 내외삼출목(內外三出目)인데 쇠서[牛舌]의 형태는 매우 섬약하고 번잡하게 장식화된 부분이 많으며 조선 후기의 쇠퇴된 수법이 곳곳에 엿보인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흥인지문 [Heunginjimun Gate, 興仁之門]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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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문: 흥인지문, 창의문, 숭례문, 숙정문 (인의예지신, 보신각)

내사산: 낙산 (타락산), 인왕산, 남산 (목멱산), 북악산 (백악산)

외사산: 아차산, 덕양산, 관악산,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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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들은 모두 3글자인데 흥인지문은 총 네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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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곽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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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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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시기에 따른 형태.  성곽을 걷다 보면 돌 모양, 색깔 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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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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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전도.  서울역사박물관 앞마당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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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성석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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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 북쪽 숙정문 ~ 혜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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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 (북대문)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년(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숙청문이 숙정문으로 바뀐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이다. 숙정문 외에 북정문(北靖門)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1504년(연산군 10)에 연산군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기라고 명령한 기록이 보이는데, 실제로 문을 옮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숙정문은 1976년에 복원한 것이다.

도성 북문이지만,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서쪽 성곽 0.5㎞, 북쪽의 진입로 0.6㎞ 구간과 함께 다시 일반에 개방하기로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三淸洞) 산 2-1번지(북악산 동쪽 고갯마루)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숙정문 [肅靖門]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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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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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 (서대문)

서울 성곽의 4대문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서대문(西大門) ·새문 ·신문(新門)이라고도 한다. 1396년(태조 5) 한양 도성(都城)의 제2차 공사가 끝나고 8문이 완성되던 때 처음 세워졌다. 1413년(태종 13) 폐쇄되고 그 대신 그 북쪽에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지어 출입케 하였다가, 1422년(세종 4) 다시 서전문을 헐고 돈의문을 수리하였다. 그 뒤 헐어진 것을 보수하여 1711년(숙종 37)에 다시 지었으나, 1915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철거되고 말았다.

대략적인 모습은 돌축대 한 가운데에 무지개문을 큼지막하게 내고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집의 초루(譙樓)를 세우고 둘레에 낮은 담을 설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돈의문 [敦義門]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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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정면 5칸, 측면 2칸, 중층(重層)의 우진각지붕 다포(多包)집이다. 서울 도성의 남쪽 정문이라서 통칭 남대문(南大門)이라고 불린다. 1395년(태조 4)에 짓기 시작하여 1398년(태조 7)에 완성되었고, 1447년(세종 29)에 개축하였다. 그러나 1961∼1963년에 있었던 해체, 수리에 의한 조사에서 1479년(성종 10)에도 비교적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 문은 중앙부에 홍예문(虹蜺門)을 낸 거대한 석축기단 위에 섰으며, 현존하는 한국 성문 건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석축 윗면에는 주위에 높이 1.17m의 벽돌로 된 여장(女墻)을 돌려 동·서 양쪽에 협문(夾門)을 열었고, 건물의 외주(外周) 바닥에는 판석(板石)을 깔았다.

건물 내부의 아래층 바닥은 홍예 윗면인 중앙간(中央間)만을 우물마루로 하고 나머지는 흙바닥이다. 지붕은 위·아래층이 모두 겹처마로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머리[龍頭], 그리고 용마루 양가에는 독수리머리를 올렸다.

이 건물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성문이기 때문에 천장을 가설할 필요가 없어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특기할 것은 이 건물의 지붕 형태가 어느 시기에 변경된 것인지 뚜렷하지 않으나 당초에는 평양 대동문 또는 개성 남대문과 같은 팔작지붕이었다는 것이 해체, 수리 때의 조사에서 드러났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서울의 목조건물(木造建物)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2008년 2월 10일에 발생한 화재로 2층 문루가 소실되고 1층 문루 일부가 불에 탔다. 홍예문과 석축은 남았다.

화재 이후 수습 작업 및 복구를 위한 각종 연구를 진행한 후 2010년 2월 착공식을 거행하고 복구 작업을 시작하였다. 복구 작업은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전통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기존의 것에서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리고, 그 위에 불탄 부분을 재현하였다. 전통 기와를 올리고, 일제 시대에 일본에 의해 변형된 부분들을 다시 되돌려 놓는 데 주력했다. 이로써 숭례문은 약 3년의 복구 공사를 거친 뒤 2013년 5월 4일 복구 기념식을 거행하고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 숭례문 [Sungnyemun Gate, -崇禮門]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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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총안, 원총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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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수문 모형

을지로6가 18번지 청계천의 오간수문 바로 남쪽에 도성의 성곽을 통과하는 수문이다. 이 물길은 도성 밖에서 청계천 본류와 합류한다. 2개의 홍예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오간수문의 형태를 축소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이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간수문 [二間水門] (서울지명사전, 2009. 2. 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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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의 개폐 (부험; 허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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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자료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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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궁

일제가 한국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서울의 남산 중턱에 세운, 신궁(神宮)이라는 가장 높은 사격(社格)을 가진 신사(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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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나오니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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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총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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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총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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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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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때 축조 (옥수수모양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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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동 벽화마을 동네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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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마을 조성, 무분별한 관광객들로 인한 혼잡으로 계단의 유명한 벽화를 지워 버린 흔적

http://blog.naver.com/ksb115205/220959579541

(참조 블로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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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40924.0100807272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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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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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이밭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효종)이 청군에게 볼모가 되어 심양에 있을 때, 나인 홍덕(弘德)이 또한 포로가 되어 심양에 있으면서 김치를 잘 담가서 날마다 드리고, 또한 본국에 돌아와서도 다시 김치를 담가서 나인을 시켜 효종께 바치니, 효종이 감탄하여 후히 상을 주고자 하나 홍덕이 끝내 사양하므로, 특명으로 낙산 아래에 있는 밭을 주었다고 전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홍덕전이라고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홍덕이밭 [弘德―] (서울지명사전, 2009. 2. 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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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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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마을 (흰벽 아래쪽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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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小門)이 설치되었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弘化)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로 고쳤다.

1684년(숙종 10) 문루(門樓)를 새로 지은 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하였으므로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虹霓)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는 혜화동돈암동 사이의 전차길을 내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북문(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1975년부터 시작되어 1980년에 완공된 서울성곽의 일부로 1992년에 복원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혜화문 [惠化門]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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