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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ongseri.yesumam.org/menu2/m2sub-01.htm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22780672008년 10월 18일 토요일

안면도 대하 여행 내려가는 길에 충남 아산 공세리 성당에 들르다..
아주 아주 안타깝게도 초반 100여 장이 넘는 사진이 다 날아갔다.  이상있는 컴퓨터에서 사진 옮기다가..  애석하디 애석하다.  따뜻한 가을 날씨, 낙엽이 떨어지는 성당의 이모저모를 담았는데..  특히 햇살에 비치는 스테인드 글라스 등..  봄에 무척 이쁘다는데 내년 봄에 꼭 가고 말거다..  물론 사진을 위하여는 아니지만 그래도..

운좋게 오픈한지 얼마 안되는 공세리 성당 기념 박물관 중간 정도 부터 사진을 올린다.
120년 성당의 역사가 가슴아픈 천주교 박해 시대를 고스란히 보듬고 있다.  마르지 않는 순교자들의 피는 거룩한 성지가 되었다.  꽃으로 장식된 계단 위로 고즈넉히 가을을 맞이하는 성당이 얼핏 보인다.  성당의 외관은 얼핏 횡성의 풍수원 성당과 비슷하다.  생각보다 작은 실내도 비슷하고..

http://gongseri.yesuma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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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성당 [貢稅里聖堂]  

충청도 지역에 설립된 초창기 천주교회이며,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에 있다.

설립연도  1895년
소재지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94
설립목적  천주교 신앙 전파와 전도


1895년 6월에 설립되었으며 당시에는 15개의 공소가 있었다. 공세리는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였던 공세창(貢稅倉)에서 유래한다. 충청도는 한국 최초로 천주교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한국 천주교가 창설된 지역이다. 그 결과 많은 공소가 생겼는데 공세리는 공소가 있었던 곳이다. 1895년 드비즈 신부가 공세리천주교회 첫 신부로 부임하였고 아산군, 천안군, 공주군, 진천군을 관할하였다. 드비즈 신부는 서울 주교관으로 부임하였다가 1897년 다시 공세리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하였고 1930년까지 재임하였다.

충청도 지역의 천주교 초기 본당 중의 하나로, 충청도에서 두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성당이다. 1895년 6월 예전의 합덕성당 전신인 양촌성당(陽村聖堂)에서 분리 설립하였으며, 현재는 대전교구 소속이다.  

공세리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인 아산·서산·한산·청주·옥천·회인 등 40개 마을에서 거두어들인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충청도 내포(內浦) 지역의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초창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로 불린 이존창(李存昌)이 천주교를 전래한 곳이다.  

이후 이 지역에서는 수많은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끊임없는 박해에도 신앙 활동이 단절되지 않아, 신앙 부활의 요람지요 전교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천주교 신앙이 허가된 이후에는 가장 주목받는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古德面) 상궁리인 이웃마을 양촌(陽村)과 지금의 예산읍(禮山邑) 간양리인 간양골 지역에 각각 성당을 설립하였다. 이 무렵 공세리 인근에는 여러 공소가 있었으며, 신자 수도 적지 않았다. 이들 공소는 본래 간양골 본당에 속하였으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간양골 본당이 폐쇄됨에 따라 양촌성당 관할 아래 놓였다가, 이듬해 드비즈 신부가 공세리에 부임하면서 본당 설립을 하게 되었다.  

처음 관할 구역은 충청남도 아산·천안·공주 일대와 충청북도 진천 일대로 매우 넓었으나, 이듬해 공주성당이 설립되고, 1901년 안성성당이 설립되어 지역이 분리됨으로써 아산 지역만 관할하게 되었다. 1894년 천주교 선교사들이 처음 상륙하여 선교를 시작한 첫 전교지임을 기념하기 위해 동네 한가운데 가정집을 성당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1895년 제3대 본당신부로 재부임한 드비즈 신부에 의해 공세창고터가 성당과 사제관 건물로 쓰였고, 1921년 근대식 성당을 완성하였다. 현재의 강당 건물은 1956년에 신축하였으며, 1970년에는 수녀원 건물이 지어졌다. 이인하(李寅夏), 김동욱(金東旭) 신부 등이 본당신부로 활동하였다.

1895년에 충청남도의 첫 성당이 성일륜(애미리오) 신부에 의해 공세리에 지어졌는데 이것이 공세리천주교회의 최초 건물이다. 1922년에 고딕식 2층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94번지에 있다.  

(이상 네이버 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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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 본 성당 입구길.  서해안 타고 내려오면서 서평택 IC로 빠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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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큰 보호수들이 몇 그루 있다.  박해의 현장을 그대로 눈과 가슴에 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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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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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땡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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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안에서..  대성당을 짓는 모습
원래는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토요일 사람들이 없어서 그냥 봐 주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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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비즈 신부의 전례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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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비즈 신부의 서한집.  구석에 동균이가 열심히 노트하는 모습..  체험학습 때 배운 습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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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 고약의 비법을 전수해 주어서 '이명래 고약'이 탄생했다는 내용이다.
어렸을 때 생각난다.  까만 진득한 약 위에 누런 종이 붙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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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모습.  목에 줄을 메달고 형구틀에 넣은 후 잡아 당겨 죽인다.  비록 목각으로 만들었지만 참혹하게 숨져간 무명 초기 성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전기가 느껴질 정도다.  대체 어떠한 신앙심이 가슴에 충만하길래 극한의 공포와 고통을 인내하며 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150년 전 생소한 서양의 종교가 평범하게 살다 행복한 삶을 마감하였을 그들의 생애를 뒤흔들었는데도 말이다.  성지를 돌아 다니며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매번 눈물이 핑~ 돌고 목이 메인다.  난 죄를 지은 게 많아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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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박씨 형제들을 비롯 순교 성인 33인을 대표하는 부조와 묘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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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옆으로 나오면 야외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보호수 그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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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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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랑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예수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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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유진 2008.10.28 23:58
    망할노무 컴퓨터...

    아깝기만 한 사진..

    그래도 다녀는 왔으니 맘만이라도 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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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유진 2008.10.29 07:45
    댓글 내 이름으로 로그인 됐구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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