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9 21:39

남양성모성지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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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amyangmaria.org/토요일..  아쉬운 늦가을 자락을 잡으려고 바람 쐬러 간 곳, 남양성모성지...
성지인 터라 여행 개념으로 삼기는 상당히 죄송스런 곳이다.  3년 전 여름에 갔을 때, 가을에 와 보면 참 아름답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생각이 났다.  하지만, 토요일 다른 때 보다 늦게 출발한 덕에 서해안 고속도로는 상당히 막혔다.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딱 2배..  11시 반 출발했는데 1시 반에나 도착했다.

우리 나라 성지 중 유일한 성모성지이다.  남양 지방에서 태어나고 순교한 무수한 무명 성인들을 비롯, 이름이 남겨진 네명의 성인을 모신 곳이며 화강암으로 묵주알을 형상화해서 조성한 묵주기도 언덕길이 유명하다.  주일 미사를 게을리하는 나로선, 핑계이지만 언제나 여러 성지를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 곳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숙연해 지는 마음은 물론이고, 한창 나이에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신심 하나 만으로 이겨내고 초탈한 성인들의 기가 담겨 있어서 나를 조금이라도 정화시켜 주시는 거 같다.

2008년 11월 8일 토요일)


<순교지 남양>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라고 해도 될 만큼, 교회가 창설된 이래로 100여 년 동안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를 비롯한 많은 박해가 있었다. 특히, 병인년 대박해 때에는 1만 명을 헤아리는 순교자가 났는데, 당시 교우의 총 수가 2만 3천 여명이었음을 감안해 볼 때 얼마나 잔학한 박해였는지를 알 수 있다. 바로 이 병인년 대박해 때 남양 도호부에도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순교하였다.

조선조 당시 남양은 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의 도호부사가 다스렸다. 박해 당시, 남양 포교들이 잡아들인 천주교인들 중, 양반 신분인 분들은 한양이나 공주로 이첩이 되어 그곳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지만, 신분이 낮은 분들은 남양부사의 재량에 맡겨졌다. 남양 부사는 모진 매질로 배교를 강요하다가 이에 응하지 않는 신자들을 바로 지금의 남양성모성지 자리에서 목매달아 죽였다. 치명일기와 증언록에는 남양의 순교자들로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정 필립보, 김홍서 토마 네 분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전하고 있지만, 다음의 몇 가지 사실들로 미루어 더 많은 신자들이 남양에서 순교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남양성모성지 웹사이트)


부부 순교자들의 얼이 서린 곳
한국천주교회 내의 유일한 성모성지인 남양에는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는 20단 야외 돌 묵주기도의 길(약 1km 정도)이 조성되어 있다. 많은 순교자들이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묵주를 손에 들고 신앙을 증거했던 순교지에서, 비록 시대는 바뀌었지만 순교자들과 같이 묵주를 손에 들고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뜻깊고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기록에 전해지고 있는 남양의 순교자 네 분 중 두 분은 같은 날, 같은 장소, 즉 남양에서 동시에 순교한 부부 순교자들이다. 기록에 의하면 김 필립보는 아내 박 마리아와 함께 충청도 내포의 사위 집으로 피신해 있다가 기도 중에 붙잡혔는데, 포졸들이 김 필립보만을 붙잡아 오려는데도 박 마리아가 "남편을 따라가 함께 죽겠다. "며 자원하고 나서, 이들 부부는 한 달 정도 남양 옥에 함께 갇혀 있으면서 문초와 형벌을 받다가 1868년 8월 3일, 같은 날에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굳은 신뢰심을 바탕으로 사랑하며 살다가 주님을 증거하며 죽기까지 몸과 마음이 늘 함께하기를 희망했던 남양 부부 순교자들의 이러한 믿음과 사랑은 이혼율이 급증하고 가정 파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요즘, 신자들에게 자신들의 신앙과 가정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부부가 나란히 순교한 장소를 무엇보다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성모님께 봉헌하고 성모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장소로 가꾸어가고 있다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이다. 남양성모성지는 이렇게 평화를 위해 그리고 우리 가정을 위해 가족들이 함께 순례하며 묵주알 위에 손을 모으고 기도할 수 있는 가정 기도의 장소이기도 하다.   (남양성모성지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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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여름에도 토요일에 갔었으나 오늘은 더더욱 미사와 행사들이 많은 거 같다.
주말 여행객들도 많았다.  묵주 기도하는 도중에도 어수선한 느낌이 들을 정도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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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조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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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탄생 마굿간 모습을 만들어 놓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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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손을 대면 항상 코끝이 시리고 가슴이 벅차 오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죄지은 게 많아서 그렇다.
손을 대고 기도한 덕에 여기 저기 칠이 많이 벗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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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광장에는 가을이 한껏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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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를 피해 숨어 사는 천주교도들은 그 당시 백정보다 못한 취급, 즉 항아리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로 목숨을 연명했다고 한다.  그 항아리에 천주교도들이란 암묵적인 표시를 하고 그들만의 소통 방법으로 실낱같은 맥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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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갔을 때 미사를 드리던 중이라 성당 내부를 보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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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입구의 성물 판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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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성지 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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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의 기도를 할 수 있는 언덕.  여기 저기 묵주의 기도를 바치는 신자들이 많아서 미안한 마음에 몰래 몰래 사진을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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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데레사 수녀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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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도예전.  제목은 '엄마 생각 등으로 성모자 상 등을 많이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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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비롯된 성모상을 우리 나라 이미지에 맞게 도안하여 만든 작품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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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의 모습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고 감탄할 만하다.
우리 나라의 유일한 성모 성지인 덕에, 더구나 가을이 아름답다는 소식이 어디 뉴스에라도 났었는지, 그리고 수도권에서 가까이 있으니까 오늘은 유달리 성지를 둘러 보는 사람들과 기도하는 신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일부 몰상식한 (비신자이겠지만) 사람들이 성요셉상 비 위에 올라 가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왁자지껄 떠들고 그러니 상당히 못마땅했다.  감동은 좀 반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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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봉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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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것으로 작은 초 한개씩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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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회는 박해시기부터 지금까지 성모님에 대한 깊은 신심과 애정을 지녀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모님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며 순례할 수 있는 순례지가 없습니다. 복음에 나타나는 성모님의 삶처럼 소박하고 이름이 없는 무명의 순교자들이 순교하신 순교지이며, 성모님의 품처럼 아늑한 남양 순교지를 한국 천주교회의 성모 순례지로 봉헌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남양’하면 성모님을 기억하며 성모님께 기도하기 위해 찾아오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남양 순교지는 성모 순례지입니다. 앞으로 자신의 괴로움, 가정의 괴로움, 본당의 어려움, 교구의 어려움이 있을 때 어머니께 바치는 이 땅, 남양에 찾아와 어머니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이 봉헌이 결코 일회적 외부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자주자주 성모님께 자신과 가정을 의탁하고 봉헌해 드리기 위해 이 남양을 찾아와 순례하며 많은 묵주의 기도를 바쳐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 성모님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991년 10월 7일, 남양 순교지를 성모님께 봉헌하며, 김남수(안젤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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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근처에 있는 은행 나무가 유달리 노랗게 물들어서 잠시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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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 먹으러 찾아 간 곳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대통령 산장' 이란 곳의 연잎 오리 찜.
식당 이름이 특이하다.  저수지를 둘러 싼 주변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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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칠갑산의 주병선.  식당의 음악들은 80년대, 90년 대 노래들이 계속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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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으로 싸서 3시간을 굽는다고 미리 예약해 놓고 가야 한다.  우리도 3시 반 도착으로 미리 전화해 놓았다.
저 오리구이를 덮고 있는 소스가 이 산장의 특제 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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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쳐 놓으면 이렇게 찰밥을 비롯해 이것 저것 많이 들어 있다. 
4인분 우리 가족이 저 한마리 먹다가 양이 많아 결국 남김.  무쟈게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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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렇게 하트 모양을 해 봐~   아이의 손에 이끌려 쑥스러운 포지션을 취함
남편 말로는 돌아 오는 길은 안막혔다고 한다.  약 1시간 정도.  
그렇게 많이 먹어 놓으니 나는 차 타자마자 식곤증에 정신을 잃음..

http://www.jjong.info/bbs/zboard.php?id=Trip&page=18&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1
(예전 남양 성지 갔을 때 사진들 링크.  아이들..  많이 자랐다 -- 나도 그 땐 젊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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