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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내린 봄비로 무척 깨끗해진 날씨 속에 여주 세종대왕릉 (영릉 英陵)과 효종대왕릉 (영릉 寧陵)에 다녀 오다.

 

  • 여주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http://sejong.cha.go.kr/agapp/main/index.do?siteCd=SEJONG

세종대왕릉: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며,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1469년(예종1) 여주로 천장하면서 세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하였으며,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하였다. 또한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하여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하였다. 입지는 풍수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하였으며, 좌우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naver)

 

 

효종대왕릉: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서 관리한다. 같은 능역 안에 있는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과 함께 동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효종의 능은 1659년(현종 즉위) 구리시(九里市)에 있는 동구릉(東九陵) 자리에 병풍석(屛風石)을 갖추어 조영하였는데,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1673년 이곳에 옮겼다. 또, 효종의 능을 이장한 이듬해인 1674년 인선왕후가 사망하여 왕릉 앞에 비릉(妃陵)을 써서 앞뒤로 나란히 쌍분을 이루게 하고 널방[玄室]은 회격(灰隔)으로 하였다. 왕릉을 옮기면서 전에 사용한 병풍석과 사대석(莎臺石)을 비로소 쓰지 않았으며, 왕릉에만 곡장(曲墻)을 만들었다.

이 능의 특징은 난간석에 12지(支)를 문자로 새겨 넣은 점인데, 이러한 수법은 이때부터 생긴 것이다. 영릉비는 김도항(金燾恒)이 짓고, 심익현(沈益顯)이 글을 썼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주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驪州 英陵과 寧陵]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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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천서리막국수 본점에서 먼저 식사 

031-883-0001  경기 여주시 세종로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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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메밀 비빔 막국수 2, 동치미 막국수 1. 각 8천원씩. 면 삶은 육수가 칼칼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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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 양념장이 매콤하고 다진 고기 등 고명이 푸짐한 것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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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옆 세종대왕역사문화관 부터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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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종대왕릉 공사 중이어서 정면에서 진입 못하고 효종대왕릉 관람 후 '왕의 숲길'을 통하여 갈 수 있다. 내년에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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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역사문화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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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 1443년. 반포는 14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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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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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 남편과 왕릉 투어를 컨셉으로 차츰 둘러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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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릉의 공간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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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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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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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관 관람 후 효종대왕릉으로. 산책길의 쭉 뻗은 소나무의 향연. 공기 맑고 가슴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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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재실. 재실은 제관의 제수 장만 및 제기 보관 등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위한 곳으로 기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고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그 시대의 건축으로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여주시 블로그)

안쪽의 키 큰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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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천연기념물 회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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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이상의 세월을 견디고 살아온 커다란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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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재실에는 이 향나무, 회양목, 느티나무가 트리오로 고고한 모습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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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보이는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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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왕릉 (영릉)

조선 17대 임금 효종과 비 인선왕후의 쌍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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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조선왕릉이 정자각까지만 일반에게 개방되는데 이곳은 능 주변까지 개방되어 능 앞까지 올라가서 가까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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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능침전경.  오른쪽 앞, 아래가 인선왕후릉.  저 뒤 위쪽이 효종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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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왕후 장씨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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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왕릉.  처음엔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의 태조 무덤인 건원릉 서쪽에 있었다가 석물에 틈이 생겨 봉분 안으로 빗물이 샐 염려가 있다고 하여 1673년 (현종 14) 세종의 무덤인 영릉 동쪽으로 능을 옮겼다고 한다. (여주시 블로그)

 

왕릉에는 후면에 곡장(曲墻)을 두르고 전면에 2단의 계체석 구조를 갖춘 후, 현종대(顯宗代)에 새로 조성한 석물을 진설(陳設)하였다. 난간석을 설치한 봉분 주위로 석양(높이 108㎝ 폭 71㎝ 두께 171㎝) 2쌍과 석호(높이 113㎝ 폭 68㎝ 두께 194㎝) 2쌍이 수호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상석(높이 50.2㎝ 폭 315㎝ 두께 200.2㎝)과 장명등(총높이 355㎝)이 놓여 있다. 상석은 나어두(羅魚頭)가 조각된 고석(鼓石, 높이 58㎝ 폭 90㎝ 두께 89㎝) 4개가 받치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8각 대석(臺石)을 받친 망주석(총높이 335㎝)이 높이 서 있다. 또한 계체석 사이의 공간에는 복두공복(㡤頭公服)을 착용한 문인석(높이 300㎝ 폭 107㎝ 두께 102㎝) 1쌍과 갑주를 걸치고 길이 181㎝의 장검을 딛고 선 험준한 기상의 무인석(높이 325㎝ 폭 113㎝ 두께 115㎝) 1쌍, 그리고 석마(높이 125㎝ 폭 65㎝ 두께 182㎝) 2쌍이 배열되어 있어 북벌을 준비하던 효종 재위기간의 긴박한 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실록에 의하면 좌측편의 무인석은 오른쪽 눈을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사실을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왕릉 아래에 자리 잡은 왕비릉의 석물도 거의 동일한 규모와 양식으로 설치되었으나, 곡장이 없다는 점이 왕릉과 다르다.

 

http://www.yeoju.go.kr/history/jsp/Theme/Save_View.jsp?BC_ID=c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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녕릉(寧陵)은 조선의 제17대 왕인 효종(孝宗)과 그 왕비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張氏)의 쌍릉(雙陵)이다. 1659년(효종 10) 건원릉(健元陵)의 서쪽 능선에 병풍석을 갖춰 모셨으나, 1673년(현종 14) 석물에 틈이 생겨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영릉(英陵)의 동쪽 홍제동(弘濟洞)으로 천장(遷葬)하였다. 한때 녕릉의 초장지(初葬地)를 송시열이 잘못 선정했다고 반대 정파(政派)가 주장하면서 여러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천릉(遷陵)의 조성시 “왕릉혈(王陵穴)뿐만 아니라 그 아래 혈(穴)도 아주 길(吉)하다”는 민유중(閔維重, 1630~1687)의 주장을 수용하여 같은 구릉의 위쪽에는 왕릉을, 아래쪽에는 왕비릉을 모신 독특한 장법(葬法)을 사용하였다. 이같은 구조를 ‘동원이릉(同原異陵)’이라 할 수 있는데 녕릉표(寧陵表)의 음기(陰記)에는 왕릉을 기준으로 해서 왕비릉을 “부장재하(祔葬在下)”했다고 기록하였다.

 

http://www.yeoju.go.kr/history/jsp/Theme/Save_View.jsp?BC_ID=c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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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숲길'이라고 하는 효종대왕릉에서 세종대왕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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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계단 위로 올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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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으로 공사 중.  내년에 완공되면 다시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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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바로 능침(陵寢)이 나타난다. 능역의 앞쪽에는 3단의 계체석(階砌石)을 설치하고 뒤쪽에는 곡장(曲墻)을 둘러 토사(土砂)의 유입을 방지하였으며 예종대(睿宗代)에 천릉하면서 새로 조성한 석물을 배설하였다. 봉분에는 난간석을 설치하고 주위에 석호(石虎, 높이 96㎝ 폭 56㎝ 두께 146㎝)와 석양(石羊, 높이 87㎝ 폭 56㎝ 두께 163㎝)을 각 2쌍씩 두어 나쁜 기운[邪氣]의 침입을 방지하였다. 그리고 봉분 앞으로 상석 2좌와 장명등(長明燈, 총높이 약 297㎝)을 놓았는데 각 상석에는 나어두(羅魚頭)가 장식된 고석(鼓石)이 4개씩 받치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8각 대석(臺石)을 갖춘 망주석(望柱石, 총높이 약 306.5㎝)이 세워져 있다. 또한 계체석 사이의 공간에는 복두공복(㡤頭公服)을 착용한 문인석(文人石, 높이 253㎝ 폭 90㎝ 두께 80㎝) 1쌍과 갑주(甲胄)를 걸치고 장검(長劍)을 땅에 꽂은 채 시립(侍立)하고 있는 무인석(武人石, 높이 248㎝ 폭 86㎝ 두께 84㎝) 1쌍이 석마(石馬, 높이 119㎝ 폭 58㎝ 두께 156㎝) 2쌍과 더불어 영릉을 호위하고 있다.

 

http://www.yeoju.go.kr/history/jsp/Theme/Theme.jsp?BC_ID=c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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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릉 보다 오히려 더 소박한 느낌.

 

영릉은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世宗)과 그 왕비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합장릉(合葬陵)이다.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돌아가시자 광주(廣州) 대모산(大母山)의 헌릉(獻陵, 태종의 능) 서쪽 언덕에 ‘동원이실(同陵異室, 능 하나에 석실 둘)’로 조성하고 오른쪽 석실(石室)은 세종의 수릉(壽陵, 생전에 미리 마련하는 왕의 능)으로 삼고 왼쪽에 소헌왕후를 먼저 안장하였다. 그리고 1450년(문종 원년) 세종이 승하(昇遐)하여 합장하니, 조선 최초의 합장릉(合葬陵)이 되었다. 영릉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치장조(治葬條)에 따라 조성한 것으로 조선 전기 능제(陵制)의 기본이 되었다. 병풍석(屛風石)중에서 영저(靈杵, 공이)·영탁(靈鐸, 방울)·지초(芝草) 문양을 제외하고 운채(雲彩)와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하여 조선 초기 왕릉의 병풍석 설치 규정을 완성하였으며 상석(床石) 밑의 고석(鼓石) 숫자를 5개에서 4개로 줄였다.

 

http://www.yeoju.go.kr/history/jsp/Theme/Theme.jsp?BC_ID=c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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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오는 길은 다시 같은 코스로 오게 된다.

다음에는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 서오릉, 그리고 구리시에 있는 홍유릉 등 관람 예정

 

 

조선왕릉(朝鮮王陵)은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고 총 40기에 달한다. 1408년부터 1966년까지 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왕릉은 선조와 그 업적을 기리고 존경을 표하며, 왕실의 권위를 다지는 한편 선조의 넋을 사기(邪氣)로부터 보호하고 능묘의 훼손을 막는 역할을 했다. 왕릉은 뛰어난 자연경관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보통 남쪽에 물이 있고 뒤로는 언덕에 의해 보호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이며, 멀리 산들로 둘러싸인 이상적인 자리를 선택해 마련되었다. 왕릉에는 매장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례를 위한 장소와 출입문도 있다. 봉분뿐만 아니라 T자형의 목조 제실, 비각, 왕실 주방, 수호군(守護軍)의 집, 홍살문, 무덤지기인 보인(保人)의 집을 포함한 필수적인 부속 건물이 있다. 왕릉 주변은 다양한 인물과 동물을 조각한 석물로 장식되어 있다. 조선왕릉은 5,000년에 걸친 한반도 왕실 무덤 건축의 완성이다.

 

http://heritage.unesco.or.kr/%EC%A1%B0%EC%84%A0-%EC%99%95%EB%A6%89/

 

 

http://whc.unesco.org/en/list/1319/

UNESCO World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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